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3월 3일] <1634> 금붕어 삼키기


'내가 말이야, 금붕어를 통째로 삼킨 적이 있지.' 새내기인 워싱턴 주니어가 떠벌리자 친구들이 10달러 내기를 걸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하버드대 캠퍼스로 퍼져 기자들까지 몰려든 가운데 1939년 3월3일 저녁, 학생식당에서 내기가 열렸다. 붕어를 태연하게 씹고 삼킨 워싱턴은 한마디 던졌다. '비늘이 좀 걸리는군.' (찰스 패너티 저, 이용웅 역,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 워싱턴의 엉뚱한 행각은 신입생 대표 자리를 노린 일종의 선거유세. 정작 그는 선거에서 졌지만 이름만큼은 1939년도 하버드대 신입생 대표보다 널리 알려졌다. 소문은 다른 학교로 번져 신기록이 쏟아졌다. 세 마리, 여섯 마리…. 하버드의 한 학생이 24마리를 꿀꺽한 뒤부터는 대학별로 경쟁이 붙었다. 미시간대에서 28마리, MIT에서는 42마리를 삼킨 학생이 나왔다. 한 해부학 교수는 '성인 남자가 삼킬 수 있는 산 금붕어의 최대치는 150마리'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를 비웃듯 300마리를 삼킨 학생이 등장하고서야 광풍은 멎었다. 사건이 최초로 일어난 지 두 달 만에 붕어 모양의 과자만 남긴 채 기행이 사라졌다(붕어빵은 유래가 달라 19세기 말 일본에서 시작됐다). 젊은이들은 왜 기행에 열광했을까. 대공황기의 와중에서 맞은 세계대전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지만 기벽은 평화가 찾아온 뒤에도 공중전화 부스에 많이 들어가기, 여학생 기숙사에 몰려가 팬티 얻어오기에서 스트리킹까지로 이어졌다. 기성문화에 대한 조소를 담았던 금붕어 삼키기는 1960~1970년대에 되살아나 요즘도 가끔씩 일어난단다. 과거와 달리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백수로 전락하는 '졸백' 시대의 한국 학생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사회는 젊은이들의 일탈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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