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정책 대토론회’에서 열린우리당 홍재형 정책위원장은 경기활성화대책을 발표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홍 위원장은 “앞으로 경제에 올인 하겠다”면서 “천정배 대표와 달리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천 대표가 늘상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이라고 주장해오던 것에 빗댄 것이자 듣기에 따라선 당내 노선 대립으로 비춰질 만한 발언이었다.
최근 경기침체에 따른 비판여론이 고조되면서 열린우리당내 경제통들이 오랜 침묵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탓인지 출자총액제 등 주요 경제 현안을 놓고 당내에서 엇갈리는 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제통 의원인 강봉균 의원이 지난달 30일 ‘경제대토론회’에서 출자총액제 완화의 불을 지핀 데 이어 31일에도 이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부영 의장은 “기업경영과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출자총액제의 완화 또는 폐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정배 원내대표는 여전히 출자총액제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형편이다.
경제통 의원들은 경제문제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개폐나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각종 사회적 쟁점에서도 보수층의 이해를 대변하며 당내 개혁노선과 대립전선을 굳히고 있다.
당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한 의원은 국가보안법 문제를 예로 들며 “당내 여론에 밀려 보안법 폐지에 불안해 하는 국민들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폐지론에 맞서 뒤늦게나마 조직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당정이 재정확대의 기조 속에 소득세율 인하의 감세정책을 시행하기로 한 것도 이들 경제통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이번 경기활성화 대책만 해도 재경부와 청와대에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떨떠름한 입장을 보였지만 당에서 내수 촉진을 위한 정치적 고려를 주장, 이를 관철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당내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경제라인업은 홍재형 위원장을 비롯 강봉균ㆍ정덕구ㆍ안병엽ㆍ김진표ㆍ이계안ㆍ정세균 의원 등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관계나 재계에서 쌓은 풍부한 실물경제 경험과 시장경제를 무기로 삼아 이달부터 경제정책에서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 역할을 맡는 ‘고위경제전문가회의’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표 의원은 “정부와의 대화 창구인 제2ㆍ3 정조위를 중심으로 몇 차례 비공개 당정협의를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임이 이뤄졌다”며 “경제부처가 하고 싶어도 못하고 엉거주춤하는 것을 당이 리더십을 갖고 끌고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의 회장인 정덕구 의원은 “지난 7월 46명으로 출발한 시사포럼이 두 달만에 83명으로 두 배 가량 늘어났다”며 “국회에서 초당파적인 시장경제파가 결집하고 있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당내 일각에서는 경기 불안을 틈타 당의 보수화가 진전되고 있다며 당내 이념적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진보성향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출자총액제가 다시 거론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가 제기되는 등 당의 경제정책이 급격한 보수화 바람을 타고 있다”면서 “당 지도부가 개혁노선을 전면에 배치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