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부식의 여성관

수십년간 역사소설 집필을 비롯해 고대사에 관한 저술을 자주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참고하게 된다. '삼국사기'는 우리나라에서 최고(最古)의 정사(正史)로 인정받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고려 중기의 김부식이 사대주의적 역사관과 유학적 윤리관에 입각해 편찬했으므로 역사적 진실을 왜곡한 바가 많고 비뚤어진 여성관도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삼국사기'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면도 있고 또 삼국시대의 사실을 기전체(紀傳體)로 기술한 유일한 사서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도 높지만 이미 같은 고려시대의 일연ㆍ이규보ㆍ이승휴 등의 지식층으로부터 부정적 평가가 나왔고 조선조로 들어와서도 안정복같은 이는 "너무 조잡하고 잘못된 바가 많아 역사서라고 할 수도 없다"고 혹평했다. 뿐만 아니라 근세의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는 "김부식의 고구려사 백번을 읽는 것보다 지안(集安)의 고구려유적 한번을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정작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삼국사기'의 역사적 가치나 사실 왜곡에 관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김부식의 여성관이다.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삼국사기'는 결국 일종의 필요악과 같은 존재가 됐는데 읽을 때마다 김부식의 엉뚱한 여성관에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삼국사기'에는 김부식 개인의 역사관을 드러낸 논평 31개가 붙어 있다. '논왈(論曰)'로 시작되는 이 논평에서 여성을 비하한 대표적인 구절을 소개한다. 이 '논왈'은 신라본기 선덕여왕조 뒷부분에 붙어 있다. "천지를 두고 말한다면 양은 강하고 음은 부드러운 것이요 사람을 두고 말한다면 사내는 높고 계집은 낮은 것이다. 어찌 늙은 할미가 안방에서 튀어나와 국가의 정사를 처리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을 것인가. 신라는 여자를 잡아 일으켜 임금자리에 앉혔으니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에나 있을 일이었고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서경'에 이르기를 암탉이 새벽에 운다고 했고 '주역'에는 암퇘지가 껑충댄다고 했으니 어찌 경계하지 아니할 것인가." 이처럼 김부식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도 여자요 자신을 내조해준 아내도 여인이었건만 여성을 암탉과 암퇘지에 비유하는 망발을 자행했던 것이다. 김부식이 이처럼 여성을 극심하게 비하한 것은 그가 여성혐오증같은 정신질환에 걸렸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삼국시대 여성들의 정치적ㆍ사회적 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탓으로 보인다. 자신이 편찬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분석해보더라도 신라ㆍ고구려ㆍ백제에서 여성의 지위가 후대인 고려나 삼종지도니 남존여비니 해서 여성을 극도로 천대했던 조선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성의 정치적 지위도 그렇거니와 사회적 생활도 매우 자유분방했다. 이를테면 신라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상 유례없이 여왕이 세명이나 있었으며 신궁(神宮)의 제관도 여성이 맡았다. 또 비록 유교적 윤리ㆍ도덕관과는 배치되지만 남녀간의 관계도 오늘날보다 훨씬 개방적이었다. 신라 왕족의 근친혼 이야기는 생략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 가운데 정식 혼인관계가 아닌 야합을 통해 태어난 사생아가 많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원광법사나 사다함이나 김유신같은 거물이 사생아였고 법흥왕은 왕자 시절 백제로 들어가 동성왕의 딸 보과공주와 사통했으며 후대의 인물인 백제 서동왕자가 무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서라벌로 잠입해 선화공주와 통정하고 백제로 데려와 부인으로 삼은 경우도 유명하다. 또 신라에서는 귀빈에게 처첩을 '대접'하는 풍습도 있었다. 고구려의 시조 추모성왕(고주몽)도 어머니 유화부인이 해모수를 자칭하는 바람둥이의유혹에 넘어가 임신을 했으니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사생아였고 평강공주가 부왕의 영을 거역하고 대궐을 뛰쳐나와 온달에게 시집간 이야기도 유명하다. 또 우황후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다음 제왕을 선택하고 여왕에 못지않은 권력을 행사한 사실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고대사 최초의 여걸로 알려진 백제의 국모 소서노를 보라. 비류ㆍ온조 두아들을 둔 과부 소서노는 동부여에서 망명한 추모에게 반해 몸과 마음을 바쳐 그를 도와 고구려를 세웠고 뒷날 졸지에 소후로 강등됨에 따라 두 아들을 데리고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부식은 이처럼 삼국시대의 여성들의 활약상은 우습게 내려다보고 여성의 존재가치 기준을 오로지 효도ㆍ정절에만 맞췄으니 '삼국사기'열전에 나오는 인물 55명 가운데 여자는 겨우 효녀 지은과 설씨녀 그리고 도미의 아내 등 3명에 불과한 까닭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시대와 인물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는 가치의 잣대는 다를수 있겠지만 남자건 여자건 다같이 소중한 존재요 따라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서로 존중해야 가정과 사회와 나라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고루한 남존여비사상에 따라 여성을 지나치게 비하한 김부식의 여성관은 해도 너무했다는 감을 떨칠 수 없다. /황원갑 (소설가ㆍ한국풍류사연구회장)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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