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부처는 남인가(사설)

이수성 국무총리는 18일 임시국회 국정보고를 통해 노동법개정 및 한보사태와 관련,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총리는 이에 앞서서도 여러 자리에서 정부의 책임을 역설했으며 사의까지 표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총리가 말하는 정부의 책임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같은 정부 안에서도 경제부처 관리들은 전혀 딴판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보사건은 자신들과 무관하고, 이에대해 아는 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총리에 비할 때 경제부처 고위관리들의 책임은 법적·행정적 책임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다를 수는 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산업의 건전한 육성을 위한 지도와 감독은 정부의 책무다. 그런데 한보부도의 정책적 책임문제에서 경제부처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다. 정부에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대출은 은행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이뤄졌고, 대출이 이뤄질 당시에는 사업성도 있었으며, 막판에 부도가 난 것도 단자회사들이 어음을 마구 돌려 은행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다. 경제관료들은 한보부도 이후 줄곧 이같은 논리를 펴왔다. 이석채 청와대경제수석은 『자율화과정에서 관료들이 손을 놓다보니 힘의 공백이 생겨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좀 더 「세련」되게 정의했지만 요령부득이기는 매한가지다. 정부가 규제를 풀어서 발생했다는 얘기인데 정부는 과연 규제를 풀었는가, 아니면 한보에 대해서만 규제를 풀었다는 얘기인가. 삼성의 자동차산업진출이나 현대의 제철산업 진출좌절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참으로 편리한 해석이다. 아무리 법적·행정적 책임을 모면해 보려는 의도라고 해도 한보부도에 정책의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강변일 뿐이다. 관료주의의 대표적인 폐습은 책임지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거나 가능한 한 피해가려는 것이라고 한다. 현직 관료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안도 아닌데 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전임자들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관리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거대한 정치적 비리사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보의 배후가 누구라는 것을 담당 관리가 몰랐다면 한보의 배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일」 또는 「한보와는 무관하다」는 관리들의 주장은 그것 자체가 의혹인 것이다. 정부의 책임소재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만 이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검찰도 정책오류에 대한 수사는 자신들의 몫이 아니라고 발뺌하나 외압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 못지않게 정책집행과정의 부조리를 밝혀야만 이같은 사건이 재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외압의 실체를 밝혀내지도 못하고 깃털만 몇개 뽑아낸 상태로 사건이 덮여가는 상황에서 정부의 책임을 규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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