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용천동굴 종유관 모습. 이들 종유관은 두께 5㎜ 안팎에 길이가 1m 안쪽이지만 생성에는 수천년에서 수만년이 걸린다. /사진=한국동굴연구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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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관광지의 동굴을 구경할 때면 떠오르는 궁금증이 있었다.
이 동굴을 처음 발견해 빛 한 줄기 없는 심연(深淵)을 향해 들어가던 이의 기분은 어땠을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암흑은 두려움으로 다가왔을까? 아니면 미지에 대한 흥분과 설렘이었을까? 또 만일 지금 줄을 서서 동굴 안으로 향하고 있는 일행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나는 혼자서 얼마나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기자는 인간 본능 혹은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을 이 같은 질문에 대해 답해줄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해메다가 지난 6월 신문지면의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세계자연유산 등재’기사를 읽었다. 아마도 그 기사의 주인공이면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기사의 주인공은 우경식. 강원대학교 지질학과 교수로 지난 6월 27일 ‘제주의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제31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총회에서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잇따른 해외출장 등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듯 했다. 처음 연락을 한지 한참 만에야 간신히 그를 만나 제주도 용암동굴의 세계자연유산 등재와 동굴 탐험에 얽힌 뒷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제주도와 다섯 개 동굴의 지질학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 받은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자연유산 등재는 동계올림픽이나 월드컵 보다 의미가 커요. 얼마 전 동계올림픽 유치한다고 난리가 났었잖아요. 그런데 올림픽 유치하면 좋은게 뭡니까. 4년 지나면 다른 나라에서 하잖아요. 그런데 세계자연유산은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곳이라는 걸 인정 받는 거에요. 다시 말해서 전세계 절경에 제주도가 포함되는 거지요. 또 세계자연유산에 화산동굴은 많이 있는데 용암동굴로는 만장굴이 처음 선정됐어요. 특히 뿌듯한 것은 신청지역인 한라산, 일출봉, 동굴 다섯 개(만장굴, 뱅드이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가 모두 등재 됐다는 겁니다. 특히 당처물동굴은 종유석이 너무 잘 보존돼있어서 외국 학자들이 한번 와서 보면 그냥 넘어갈 정도에요.”
-일반인도 공개되지 않은 동굴을 탐험하거나 구경할 수 있나요.
“허가를 받으면 되지만 사실상 어려워요. 쳔연기념물이나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문화재청에, 일반 동굴은 지자체를 거쳐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도 있고…. 관할에 따라 복잡해요. 일단 관의 허가를 받고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면 되요. 동굴 안에는 미생물도 있고, 문화재나 고고학적 자료가 널려 있기 때문에 절대 아무나 들어가면 안돼요. 외국에서도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만 허가를 내줘요. 그런데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동굴을 관광자원 혹은 소득원으로만 생각해 마구 개방해요. 그러다 보니까 쓰레기를 버리고, 이끼가 끼는 등 훼손이 심해요. 표지판에 마리아상이니, 코끼라상이니 이름만 그럴 듯 하게 붙여 놓지 말고, 생성되기 까지 걸린 시간, 가치 등을 교육해서 아끼는 마음이 생기도록 해야지요.
동굴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그의 목소리 톤은 점점 높아진다. 동굴의 어떤 점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첫 인상에 마음을 빼앗길 만큼 동굴이 매력적이던가요?
“물론이지요. 2002년 여름 국제동굴엑스포가 열렸는데 그 때 1년간 자료를 모아서 ‘동굴’이라는 책을 발간했어요. 그 책이 프랑트푸르트 도서전에서 국내 자연과학 서적 중에는 유일하게 한국도서100선에 선정됐어요.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요.”
-세계유산 등재의 요건은 무엇인가요.
“두 가지가 전제 되어야 해요. 같은 분야의 유산중 어느 곳 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고, 지정한 다음 관리 유지를 잘 하겠다는 것을 약속해야 해요. 심사기준은 지질학적 특이성, 생물다양성, 뛰어난 경관 등이 있는데 우리는 지질학적 경관 등으로 신청했어요. 거기에 더해 뛰어난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되요. 일반인이 보기에 크고 멋있다고 등재 되는게 아니에요.”
-새로운 동굴을 발견하면 일반에게 개방하는게 옳은가요. 아니면 보존을 위해 그대로 놔두는게 옳은가요.
“지자체에서야 개방해서 관광자원화 하고 싶겠지만 필요 이상의 개발은 가급적 제한하는게 좋아요. 삼척 관음굴은 국내 최고의 동굴인데 삼척시에서 개발을 하고 싶어 했지만 내가 만류했어요. ‘이 것 마저 훼손되면 후손들에게 물려줄게 없다’고 반대해서 관철시켰어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숨겨진 비경을 혼자서만 즐기고 다니는 이 사내의 생활이 부러워졌다.
-국내에 있는 동굴은 대부분 가보셨나요.
“웬걸요. 국내에 동굴이 1000개도 넘는데 그중에 200여개 밖에 못 가봤어요.”
-동굴탐험 하면서 힘든 점은 뭔가요.
“동굴탐험은 위험해요. 제자가 루트 개척을 위해서 동굴에 고인 물속으로 스쿠버다이빙을 했는데 들어가서 안 나왔어요. 제자를 잃은 아픔이 컸지요. 바다나 강에서는 물위로 솟구치면 되지만 동굴에서는 위로 치솟는다고 다 나올 수 있는게 아니에요. 그 밖에 마음 아픈 것은 도굴꾼이나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동굴이 훼손되는 거에요.”
애로점을 듣다 보니 우교수 처럼 루트도 없는 동굴을 탐험하기 보다는 공개된 동굴 구경을 하는게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적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는 행여 오염이라도 시킬까봐 신발을 벗어 든 채 발길을 옮기고, 라면국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신다는 그의 집념은 아무래도 범인(凡人)이 범접할 영역 밖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동굴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외국은 석회동굴이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용암동굴이 많다는 거지요. 제주 만장굴에는 용암이 흐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세계적으로 만장굴 처럼 규모가 크고 미지형(微地形)이 잘 남아있는 곳은 드물어요.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대단치 않게 여기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