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사에 일획을 그은 쾌거인데 그와 동시에 한국 사회의 구심점에도 일대 변화가 생긴다. 3·1운동을 계기로 기존의 왕족이나 고관대작 양반들의 시대가 끝나고 국민·인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기존 지배층이 자신의 자리를 걷어찼다. 거국적인 시위운동을 계획한 3·1운동의 주체들은 당연히 처음에는 구한말 관료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백성들을 이끌어 달라'는 당연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응하지 않았다. 일본의 회유공작이나 식민지 처지에 대한 체념 때문일 것이다. 결국 독립운동의 주도권은 새로 부상하는 지식층이 맡는다. 학생이거나 교사·언론인, 그리고 종교인이다. 이후의 한국 역사는 이들이 끌고 가게 된다. 3·1운동을 끝으로 왕정 이데올로기는 영원히 땅속에 묻히고 '귀족화'된 양반들도 사라진다. 사진에 보이는 중앙고등학교 숙직실이 3·1운동 준비를 위한 아지트가 된 이유다. 지금은 '3·1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돼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중앙고등학교가 한참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다.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에 이 학교가 배경으로 나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