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00하자는 것도 아니고 00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야.”
요즘 한 방송사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같기도’ 개그 중 한 토막이다. 미묘한 상황을 애매한 행동으로 넘기는 비겁함을 꼬집는 블랙코미디다. 그런데 요즘 같아서는 이 개그맨들도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정치권이 한 술 더 뜬 ‘같기도’를 보여주고 있는 탓이다.
그 대표적 사안이 주택법 개정안 등 민생법안과 사립학교법 재개정안 처리 문제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지난달 말 원내대표 회동에서 ‘사학법과 주택법’의 2월 임시국회 처리에 합의했으나 2개 법안 모두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사실상 2개 법안의 빅딜을 시도했다가 민생법안을 볼모로 교육개혁안을 후퇴시킨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눈치보기를 하는 것이다. 양당 지도부는 당시 합의가 사실상의 ‘빅딜’이라는 당 안팎의 비판을 극구 부인한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경우 합의내용이 사학법과 주택법을 ‘병행 처리’하자는 것이지 ‘연계 처리’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일반 국민이 봤을 때 ‘병행’이나 ‘연계’나 똑같은 ‘빅딜’일 뿐이다. 그런데도 양당은 여전히‘이건 빅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함께 처리 안 하자는 것도 아니야’라는 식이다.
애매한 코미디는 15일에도 연출됐다. 열린우리당이 2ㆍ14 전당대회 이후에도 신당 추진에 성과를 내지 못하자 당내 초선 의원 6명이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당이 소속 의원 108명의 거대 정당이라는 기득권에 파묻히려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고 이로 인해 당 밖의 신당 추진 파트너들이 동참하지 않고 있다는 게 요지다. 이들 의원은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경고도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득권 포기를 촉구할 ‘중대 결심’이라면 당연히 ‘탈당’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작 중대 결심이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들 의원은 “탈당은 없다”라고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중대한 것도 아니고 중대하지도 않은’ 성명이 돼버린 셈이다.
정치권이 이처럼 모호한 희극에 빠져드는 이유는 ‘명분’이 없는 행동을 하거나 명분을 실천에 옮길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의 궁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사학개혁이라는 명분을 저버리는 정책 빅딜이나 대의를 내세워 전체의 결단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기득권은 버리지 못하는 우유부단은 국민들의 외면을 부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