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노동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제`의 법제화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인수위 측의 위원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개혁의지를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보고청취를 거부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시정을 위해 노동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으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대선공약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전체근로자의 56%로 절반이 넘고 이들의 월평균 임금은 100만원으로 정규직의 절반 수준으로 낮다. 그래서 노동계는 비정규직 차별을 5대 노동차별 중의 하나로 삼아 이의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반해 경영계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제가 노동시장을 경직화하고, 임금코스트를 올려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도입에 반대해 왔다. 또 임금이 올라가면 비정규직의 채용도 줄일 수 밖에 없어 피해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해 왔다.
노동부가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한 것은 경영계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한 것 외에 입증하기가 어려운 노동의 동일 가치성 문제에 관한 법제화의 난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하겠다.
인수위의 역할은 현 정부의 업무를 파악, 계승할 것과 버릴 것을 선택하는 작업이다. 업무인수 단계에서 차기 정부의 공약사항을 챙겨오라고 하는 것은 본래의 기능을 한참 넘어선 것이다. 차기 정부의 공약은 차기정부에 가서 수행하면 된다. 공약사업에 대해 현 정부가 반대입장을 갖고 있다면 그 사유를 주의 깊게 경청해 공약의 타당성과 실현가능성을 점검하는 것이 바른 자세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수위의 업무태도에 대해 `점령군 `같다는 등 말이 많다.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가 인수위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줄을 잇고 있다. 새 대통령의 정치이념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율하는 것은 필요한 작업이지만, 현실을 외면한 채 종전의 입장에서 표변하는 식의 정책선회는 매우 잘못된 것이고 일면 위험하기까지 하다.
상속ㆍ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 도입, 금융사의 계열분리 명령제 등에서 그런 조짐이 완연하다. 그런 정책선회는 반개혁적이라는 눈총을 면하려는 면피용이거나,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임기응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수위의 노동부 보고청취 자세는 공무원들에게 그 같은 눈치보기와 보신주의를 강요하는 결과가 될 까 두렵다.
인수위는 먼저 정부의 업무보고에 대해 겸허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개혁을 주문하더라도 그런 다음에 해야 할 것이고, 주문 방법도 진지한 설득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권구찬기자 chan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