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제발 돈좀 ?隻牝?" 통사정 이젠 옛말

내부자금 풍부하고 주식·채권 활성화로 여유우량 대기업들이 은행돈을 안 쓰기 시작한 것은 벌써 2~3년이 됐다. 그러나 올들어 이 같은 현상은 유난히 두드러지고 있다. 회사채시장에서 우량기업의 채권이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인기를 끌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는데다 주식매각 등도 매우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5대 계열의 주요기업들은 내부 잉여자금도 많다. 급히 돈 쓸 일이 없는 것도 은행과의 거리를 멀게 하는 요인이다. 이에 따라 연말 부채비율을 줄이느라 지난해 12월 은행돈을 많이 갚았던 5대 계열 소속 대기업들은 해를 넘겨 다시 여신을 일으키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의 '탈(脫)은행' 바람은 이래저래 거세지고 있다. ◇우량 대기업 여신상환 쇄도 5대 계열과의 여신거래를 전담하는 산업은행 금융1실은 올들어 초상집 분위기다. 돈을 갚겠다는 기업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SK텔레콤 등 5대 계열의 대표적인 우량기업들은 은행대출을 쓸 이유가 없다는 입장. 그래서 산업은행 금융1실의 간부들은 빚을 갚겠다는 이들을 말리고 설득하는 게 큰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출잔액은 올들어 5대 계열 모두 줄었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대기업과의 금융거래 전략을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특수요인(계열별 한도초과) 때문에 5대 계열 여신을 늘리기 어려운 조흥ㆍ한빛ㆍ외환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들도 대출잔액이 제자리걸음이다. 국민은행은 올들어 2개월간 5대 계열에 대한 신용공여액(여신+여신성 유가증권)이 200억원, 하나은행은 900억원 늘어난 반면 서울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1,300억원, 700억원이 줄었다. 시중은행의 대기업 금융담당자들은 한결같이 "신인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대출금을 상환하겠다고 나서 대출거래 잔액을 유지하는 일도 어렵다"고 토로한다. 은행권 전체로 보면 올들어 지난 2월 말까지 5대 계열 여신은 약 1조원 가량 감소했다. 이 기간에 은행 가계대출이 9조원 이상, 중소기업에 대한 여신까지 포함하면 15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계열별로는 SK계열이 비교적 은행권 여신을 갚는 데 적극적이다. 산업은행과 주요 시중은행의 SK계열에 대한 신용공여액은 대부분 줄어들었다. 반면 현대계열은 일부 시중은행에서 여신잔액이 대폭 늘어나는 등 은행별로 편차가 심했다. ◇우량은행ㆍ대기업 조달비용 엇비슷 우량은행이 채권(금융채)발행을 통해 3년 만기 자금을 조달할 경우 25일 현재 조달금리는 6.8%선. 이날 삼성전자와 포철 등 소수의 트리플A 신용등급 대기업들은 발행시장 3년물 회사채 금리가 6.9%로 고시됐다. 1년여 전만 해도 신용등급이 같은 은행과 제조업은 채권금리에서 0.3~0.5%포인트의 차이가 났다. 그 격차가 최근 0.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논리대로만 보면 은행들은 자체 조달금리에 신용보증기금 출연료(0.3%) 등을 더해 대출금리를 책정하는데 이렇게 조달금리가 좁혀져서는 우량 대기업에 대해 대출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상을 넓혀봐도 인건비와 적정마진 등을 감안한 '합리적인 대출금리'를 어지간한 우량 대기업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결국 5대 계열은 근본적으로 은행의 거래대상에서 벗어나있다고 봐도 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더이상 주요 대기업들을 예대마진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고객층으로 보고 있지 않다"며 "대기업이 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금융ㆍ재정자문(financial advisory)역을 맡는 등 투자은행 분야의 역할로 접근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성화용기자 최윤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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