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가 제국주의(세계금융질서 재편)

◎지구촌 자본시장 좌지우지 횡포/미 행정부 엄호속에 막강한 자금력동원/국경초월 수익챙겨 「신용평가무기」 사용도지난 5월 2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7천여명의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독일 2위 철강회사인 크루프사가 1위 철강업체인 티센사를 인수하는데 도이체방크가 자금을 지원, 산업평화를 깼다고 항의했다. 그들은 뉴욕 월가의 생리, 즉 황야의 무법자와 같은 냉혹성과 라스베이거스식 도박성이 기업 인수에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크루프사의 기업 인수에는 뉴욕 월가의 간판회사 골드만 삭스사가 기획에서 전략, 자금지원에 이르기까지 일괄 간여했다. 도이체방크는 골드만 삭스의 요청으로 뒤늦게 참여, 시위대의 타깃이 됐을 뿐이다. 90년대 이후 유럽과 일본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동안 미국경제만 장기호황을 구가했다. 그 결과 세계 금융시장에 미국자본, 즉 뉴욕 월가의 자본이 독점하는 현상이 굳어지고 있다. 미국 금융자본이 국제 유동성의 헤게모니를 쥐고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이른바 「월스트리트 제국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 두번째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는 유럽 금융시장마저 월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 올하반기 아시아를 비롯한 이머징 마켓을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의 주역도 다름아닌 월가의 자본이다. 지난 5월 조지 소로스, 줄리안 로버트슨, 브루스 코브너, 레온 쿠퍼맨등 월가의 큰손들과 JP 모건, 시티코프, 골드만 삭스, BZW등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태국을 대거 빠져나갔다. 두달후 태국 바트화는 폭락했다. 또 지난 10월말 월가 헤지펀드들이 러시아와 중남미를 집중공략했다. 러시아와 중남미 주가가 폭락했고, 해당 정부는 자국 통화 방어에 나서야 했다. 월가의 자본은 미국 경제 호황으로 인해 생긴 엄청난 여유자금과 미행정부의 「강한 달러」 정책에 힘입어 지구촌의 국경을 넘나들며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외환시장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물량만 해도 수조 달러에 이르고, 자본 거래까지 합치면 수십조 달러가 국경을 넘나든다. 미국의 경제평론가 윌리엄 그레이더씨는 저서 「하나의 세계」에서 지구촌 단일경제에서 나타난 국제 금융자본의 횡포를 이렇게 지적했다. 『금융자본가들은 수익이 줄어든 기업과 산업을 처벌하고, 자본 활동에 장애를 주거나 기분나쁜 조치를 취하는 나라와 경제 권역마저도 징벌한다. 국제금융자본가들은 독재자라고 비난을 받을때 인류평등주의라는 가치를 내세운다.』 그레이더씨의 분석을 토대로 할때 아시아시장은 월가의 처벌대상이었다. 곳곳에 투자장벽이 있고,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고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을 보지않으면 투자위험도가 높은 곳이었다. 그들에겐 투자 이익 회수라는 자본의 논리만 있을뿐 투자대상국가의 이해에는 관심이 없다. 미국 행정부도 월가 자본의 논리를 대변하고, 세일즈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뿐이다. 조지 소로스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로부터 공격을 받았을때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은 그를 두둔했다. 클린턴 미대통령은 지난달말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 아시아 국가의 금융개혁을 요구하며 월가의 논리를 되풀이했다.월가의 또다른 무기는 스탠더드&푸어스(S&P), 무디스와 같은 신용평가기관이다. 이들 기관의 평가는 조사대상 회사와 국가에 치명적이다. 지난달 한국 은행들의 해외자금줄이 막힌 결정적 계기는 이들 신용평가기관의 국가신인도 하향조정이었다. S&P는 지난 8월 한국에 대한 평가를 하향조정한이후 10월에도 또한차례 낮은 점수를 매겼다. 그러자 산업은행 채권의 금리가 정크본드 수준까지 떨어졌고, 한국에 대한 돈줄이 막혀버렸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국경을 손쉽게 넘나드는 거대자본의 이동에 제한을 가하자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이론은 25년전 예일대 교수인 제임스 토빈이 제기한 바 있는데, 동남아 국가들은 이를 본따 「토빈세」의 창설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뉴욕=김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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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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