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세기를 보내며-20세기 20선] 5. 수출입상품

우리 지리학자조차 세계지도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아시아대륙 동쪽 끝의 한 나라. 땅도 척박해 공업화의 원료가 되는 물질은 거의 보유하지 못한 국가. 강대국에 지배당해 반만년 역사동안 단 한번도 풍요롭게 살아본 적이 없던 나라.해방과 6.25전쟁후 남겨진 것은 황무지 앞에서 우리는 햄릿성 구호를 내걸고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다른 선택은 죽음이었기에 강요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부존자원이라곤 거의없는 한국경제를 영위하며 성장하기 위해선 해외로부터의 자원수입과 이 수입대금을 마련해 주는 것은 절대적인 요건이다. 수출을 많이해 투자에 필요한 시설재, 수출품 생산에 필요한 원료, 국민이 소비하는 물자를 많이 들여올 수록 국민경제의 성장과 수출증대, 그리고 국민생활 향상을 기할 수 있다는 경제철학이 강제된 것이다. 머리카락까지 잘라 팔았고 애국선열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뿌린 피의 대가로 대일청구권자금을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모아지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지었고(대일청구권자금 5억달러중 포철에 7,370만달러 투입), 다른 기간산업도 만들 수 있었다. ◇10대 수출품 20세기 우리의 기본전략은 「수출제일주의」 였다. 하지만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 팔려고 해도 추진할 자금이 없었다. 63년 6월말 현재 달러 보유고는 고작 1억달러도 않되는 9,300만달러에 불과했다. 닥치는 대로 팔 수 밖에 었었다. 1억달러 수출을 간신히 넘은게 64년, 3억달러는 67년에 넘었고 70년에 10억달러, 7년 후인 77년에 100억달러 수출을 했다. 당시 우리 사회 분위기는 작년은 「일하는 해」였고 올해는 「또 일하는 해」였다. 수출 100억달러만 넘으면 우리도 선진국 이라는 순진한 기대도 충만하던 때였다. 지난해 우리나라 총 수출 규모는 1,323억달러. 이 와중에서 우리 경제를 실제적, 상징적으로 이끈 10대 수출상품은 돼지털(豚毛)과 머리카락, 철광석-중석 등 천연자원과 식료품, 섬유, 중동건설특수,철강, 선박, 석유화학 제품, 컴퓨터, 자동차, 반도체 등이 꼽힌다. 62년 우리나라는 5,481만달러를 수출했다. 그 내용은 돼지 147만달러, 생선 345만달러, 마른생선 249만달러, 조개류 181만달러,쌀 893만달러, 김 75만달러 등 식료품과 산동물 수출이 2,185만달러였다. 또 생사 396만달러, 고령토·흑연 등 광석 269만달러, 중석 337만달러, 철광 385만달러, 돼지털 99만달러, 한천(寒天) 132만달러, 무연탄 274만달러 등 천연원자재 1,937만달러 등 이다. 양자를 합친 금액은 총 4,122만달러로 당시 총수출액 5,481만달러의 75%가 천연물이다. 돼지털은 물론 여성 머리카락까지 잘라 수출했다. 섬유수출은 인건비가 많이 들어 선진국이 외면하는 상품을 찾는 과정서 우리 주력수출품으로 집중육성됐다. 너무 가난해 남자들 일감이 었어 여자가 생활전선에 나서던 초창기 상황도 작용했다. 63년 제조업종사자 40만명중 섬유공업종사자는 11만명, 이중 대다수가 여공이었고 70년, 75년에는 섬유가 국내 최대 수출품목이 됐다. 73년 10월 제 1차 오일쇼크를 기폭점으로 우리 건설업체들의 중동진출이 불붙기 시작했다. 중동진출은 1차 오일쇼크로 인한 외환위기의 탈출구였고 77년 우리 경제가 흑자로 돌아선 원인이 됐다. 철강과 선박, 석유화학제품이 우리경제 주요 수출품목으로 들어선 것은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부터. 특히 포항제철은 한일국교 정상화때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 5억달러중 7,370만달러가 투입돼 애국선열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뿌린 피의 대가로 건설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현대중공업은 세계 최대 조선소로 성장했다. 컴퓨터와 반도체가 우리 주요수출품목의 상위 명단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들어서부터. 특히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수출은 지난 98년 170억달러. 전체수출물량의 12.9%를 차지하고 있다. 한때 우리경제가 IMF쇼크를 불러온 것도 반도체 호황에 따른 호황을 전체적인 실물경제 호황으로 파악한 오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반도체는 우리 수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동차도 반도체에 이어 줄곧 단일품목 최대수출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완성차 수출은 99억달러로 전체 수출물량의 7.5%를 차지했다. 해방후인 47년 7,300여대에 불과하던 차보유량도 50년만에 1,000만대를 넘어섰다. 수출차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 모델은 현대차 포니. 포니는 국내 첫 고유모델로 73년 개발돼 76년 6월 에콰도르에 6대를 수출함으로써 국산차 수출시대를 열었다. ◇10대 수입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공장을 지어야 된다는데 무슨 공장을 지어야 되는지 암담했다. 생각다 못해 산업은행 조사월보에서 수입일람표를 훑어보고 수입금액이 많은 것을 추려냈다. 대부분 당시 우리 국민 3,000만명을 먹여살리는 의·식·주에 관한 것이었다』 5.16후 70년말까지 국내 공업정책 밑그림을 그렸던 오원철(吳源哲) 전 청와대경제수석 비서관은 「한국형 경제건설」이란 저서를 통해 이같이 회고하고 있다. 수입금액이 많은 품목부터 지어나갔던게 우리 경제사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그간 우리와 함께 했던 10대 수입품목은 석탄, 비료, 곡물, 원유, 기계, 전자부품, 석유화학제품, 컴퓨터, 반도체, 귀금속, 기호식품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1차 5개년 계획 기간동안 호남비료, 충추비료, 영남화학, 한국비료 등의 탄생은 식(衣)에 관련된 것이었다. 45년 8월 해방후 우리 비료산업은 심각한 궁지에 빠졌다. 국내 비료 총생산의 90%이상을 차지하던 흥남비료공장이 북한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남한은 61년 4월 충주비료공장이 완공되기 까지 비료 전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땅을 어머니의 젖줄로 알고 살아왔고 해방후 7할이상이 농민이었음에도 우리는 항상 식량부족에 허덕여왔다. 90년대 들어서도 쌀 자급률은 90%이상이지만 다른 곡물 자급률은 50%가 밑도는 품목이 허다하다. 61년 곡물수입량은 달일품목으로 5위, 지난해도 곡류수입량은 전체수입물량의 2.3%를 점유해 7위를 유지하고 있다. 「휘발유 안쓰는 자동차를 만들라」. 「1957년 5월 8일자의 전국 자동차수를 넘지 못한다」 이승만대통령이 마련한 자동차대책에는 원유로 인해 우리경제가 받았던 타격의 한 일면을 보여준다. 원류수입량은 줄곧 우리 수입품목 1위를 지켜왔다. 70년대 초 두차례 오일쇼크에 흔들린 경험이 있는 우리는 최근국제유가가 11월 18일 현재 배럴당 23.65달러로 연초 10.5달러보다 상승, 올 원유수입부담이 26억달러가 증가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게 현실. 우리 경제가 비료와 곡물, 원유 등 1차 산품과 함께 기계, 전자부품, 석유화학제품의 수입물량을 늘려나가게 된 배경은 수입유발 수출구조를 갖춘 우리경제의 특수성 때문. 수출이 늘어날 수록 수입도 늘어나는데 우리 경제가 70년대 들어 본격적인 중화학 공업시대를 열어가면서 이들 품목의 수요가 급속히 늘어났다. 컴퓨터와 반도체는 전기전자산업이 우리 경제에 뿌리는 내림에 따라 비메모리반도체나 설비, 반도체제조용장비 등 중간재형태의 부품수입이 증가하면서 주요 수입품목으로 자리잡았다. 기호식품, 귀금속이 90년대 들어 주요수입품목에 들어간 것은 주목거리. 이같은 사치호화풍조가 만연되면서 우리경제는 지난 97년 11월 IMF쇼크로 나타났다. 한동안 주춤하던 이들 수입 소비재는 최근 경기회복에 따른 심리회복으로 당시 증사세로 돌아서 또다시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수출제일주의 공업구조는 우리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부정적인 그늘도 남겨 놓았다. 수출제일주의는 원료를 외국에서 구입해 국내서 가공, 재수출하는 「국제하청공업형」구조를 낳았다. 국제하청공업형 구조는 대외종속하는 구조를 갖출 수 밖에 없다. 21세기를 마감하며 세계 유수의 경제학자들이 「카피머신」이 아닌 독자적인 개술개발을 우리기업들에게요구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정승량기자S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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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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