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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현대중공업그룹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전에 전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그룹의 주력인 조선사업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가 절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KAI 인수전 참여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일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인수전 참여로 대한항공의 KAI 인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특히 관심의 초점은 그동안 KAI 인수에 사활적인 노력을 쏟아온 조양호(사진) 한진그룹 회장의 꿈이 이번에 이뤄질지, 아니면 현대중공업으로 인해 그의 꿈이 꺾이게 될지 여부이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그동안 KAI 인수를 위해 준비해왔던 것을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가격 문제도 현대중공업이 들어왔다고 해서 높이거나 낮추지 않고 생각해왔던 대로 적정하게 써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현대중공업의 KAI 인수에 대한 열의가 얼마나 크냐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KAI 인수가 절박해 높은 가격을 써낸다면 항공기 운항과 제조를 아울러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조 회장의 '글로벌 항공 리더'의 꿈은 멀어질 수도 있다.
일단 현대중공업의 자금사정을 보면 설사 KAI 인수 필요성이 절박하다 해도 통 큰 베팅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국내 최대의 조선업체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와 선박금융 위축 등으로 올 들어 심각한 수주 부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주력사업인 조선 외에도 플랜트ㆍ건설기계ㆍ엔진ㆍ전기전자ㆍ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사업부를 거느리고 있지만 현재 대부분의 사업부에서 수익성에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지난 2010년에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기도 했으나 현대오일뱅크 역시 지난 2ㆍ4분기 국제유가 하락의 여파로 적자를 기록했다.
물론 현대중공업이 KAI 인수를 위해 예상 밖의 적극성을 띨 가능성도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항공우주사업을 눈여겨봐왔으며 이번 KAI 인수가 좋은 기회라고 판단해 인수전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엔진과 전기전자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는 만큼 KAI 인수시 어느 정도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이 경우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KAI 인수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KAI의 총 인수자금이 경영권 프리미엄 포함 1조4,000억원 내외로 추정되지만 대한항공은 1조원 정도를 적정가로 보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경쟁에 돌입할 경우 이 같은 매각가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최근 몇 년간 수주가 줄었지만 지난 2ㆍ4분기 회사채를 발행하고 현대차 주식을 매도하면서 약 1조4,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한 상태"라며 "내년부터는 현금 흐름도 개선될 것으로 보여 KAI를 인수한다고 할 때 현대중공업의 자금사정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변수로는 현대중공업이 이번 KAI 인수전을 끝까지 완주하지 않는 경우이다. 현대중공업이 본입찰 이전에 중도 하차하게 되면 입찰은 자동 유찰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전 참여 여부를 검토하다가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부족하고 경기 변동주기를 볼 때 중공업과 반도체산업 간 상호 보완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인수전 불참을 선언한 전력이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예비입찰서를 접수했지만 아직 KAI 인수를 위한 자금 계획이나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한항공이 인수에 여전히 유리한 입장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KAI의 한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인수의지를 표현했던 대한항공과 달리 현대중공업의 경우 사전 자료 요청도 없었고 갑작스럽게 접수했다"며 "진의가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의 참여가 이번 입찰을 유효 입찰로 만들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