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경제민주화와 가계경제


가계(소비자)ㆍ기업ㆍ정부는 각각 경제주체로서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시스템이다. 가계는 국가나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소비의 주체가 되며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제공하며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러한 경제활동의 주체들이 원활하게 활동하며 효율성과 공평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다. 국가가 성장을 추구해 부를 축적하고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분배해 사회후생을 높여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정부 정책은 실패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119조의 1항과 2항이 국가의 의무를 잘 대변하고 있다. 특히 제2항인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에 근거해 부의 공평한 분배 문제가 거론된 것이 경제민주화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에서 가계는 빠진 채 기업 위주,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평한 분배 문제가 주로 거론되고 있다.


경제주체의 근간이 되는 또 하나의 주체인 가계와 소비자에 관해서는 역대 정책공약의 범주에 들어간 모든 정책 이슈에서 이를 기준으로 제시한 정책을 찾기 어렵다. 지금까지 제시된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논의나 정책은 가계나 소비자의 관점이 반영되지 못했다. 대신 가계의 역할을 기업이나 국가경제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상대적 파트너로서 강조해왔다. 과거 경제성장에 필요한 우수한 근로자를 키워내기 위해 대부분의 대한민국 가계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사교육과 대학교육에 투자해왔지만 부모나 자녀세대 모두 지속 가능한 생활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청년 일자리 부족으로 취업이 어렵다 보니 경제적 여건 탓에 결혼을 미루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도 쉽지 않다. 자녀를 믿고 가계의 재정을 모두 퍼부었던 베이비붐 세대는 100세 시대를 맞아 40년 이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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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의 안전 확보도 걱정스럽다. 가계소비자가 소비하는 생필품 가격이 예측하기 어렵게 변하고 있어 생활에 불안을 준다. 또 주거비가 엄청나게 높아지고 통신비와 에너지 비용 등이 서민과 중산층 가계를 압박하고 있다. 장기적인 경제안정에 대한 기대도 무너지고 있다. 은행의 불완전판매 권유를 믿고 맡긴 노후자금을 날린 금융피해 소비자는 은퇴 후 생활이 막막해지게 됐고 가계의 안정된 자산증식 수단이라고 믿고 융자까지 받아 마련한 주택 가격은 폭락하고 전세금은 치솟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각각의 관련 이익단체들은 정책형성과정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가계와 소비자는 조직화되지 못해 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조직적으로 이를 반대하거나 중지시키기가 쉽지 않다. 가계나 소비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각 부처의 편의적인 발상으로 이뤄진 많은 정책 때문에 가계와 소비자가 겪는 폐해나 고통은 너무나 크지만 추후에 시정되기는 어렵다. 가계와 소비자는 정책의 결과를 수동적으로 받는 집단으로 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보상받을 수도 없이 고통을 감내할 뿐이다.

이제는 가계나 소비자정책이 더 이상 주변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곧 출범을 앞둔 새 정부는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가계와 소비자 중심으로 프레임을 구성하고 가계에 미칠 영향을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정책이 실현돼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중산층 70%를 지속 가능할 수 있게 하는 경제민주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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