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샘물(생수) 공장을 가진 A사는 지난해 탄산수도 함께 만들기로 했다. 샘물에 탄산만 넣으면 되기 때문에 생산을 추진했다가 이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먹는 샘물 공장에서는 샘물 이외에 다른 시설을 설치하면 안 된다는 법 때문이었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샘물 공장에서 탄산수도 만드는데 국내에서는 외부에 별도의 시설을 만들도록 돼 있다.
#신체에 착용하는 웨어러블기기의 디자인이 주력인 B사는 말도 안 되는 전기통신설비 기준에 애를 먹고 있다. 유심(USIM)칩은 단말기에 '삽입'해야 하며 '부착'하면 안 된다는 규정 때문이다. USIM칩은 사용자확인과 전자상거래에 쓰이는 만큼 스마트기기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웨어러블의 특성상 외부에 달 수도 있어야 하는데 현 규정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0일 황당한 규제를 비롯해 낡은 규제, 국제기준보다도 강한 '갈라파고스 규제' 등 628개의 과도한 규제를 찾아내 정부에 개선을 요구했다.
먹는 샘물만 해도 A사는 먹는 물 관리법 탓에 탄산수시장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국내 탄산수시장은 2010년 75억원에서 지난해 195억원으로 약 2.6배 커졌지만 황당한 규제 탓에 산업성장이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USIM칩 관련 규제도 마찬가지다.
황당한 규제는 이뿐이 아니다. 의약품 취급지정시설인 골프장이나 스키장은 일반 의약품을 비치할 수 있지만 야외수영장이나 빙상장에서는 의약품 취급이 불가능하다. 수영장이나 빙상장에서도 찰과상이나 뇌진탕 같은 응급상황이 자주 발생하지만 취급지정시설로 분류되지 않은 탓이다.
또 자동차 정비사업자는 전자기록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자동차 정비내역서를 종이로만 보관해야 한다. 산업단지 기숙사에서는 공동취사만 가능하다.
공장 주변 소음을 도서관이나 숲 속 수준으로 유지해야 해 애를 먹는 기업도 있다. 경기도 소재 C사는 공장 준공 이후 해당 지역이 녹지지역으로 지정되고 주변에 택지가 조성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공장소음을 40데시벨(dB)로 유지하도록 했다. 40dB는 조용한 숲 속이나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는 수준이다. 공장이 먼저 들어왔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조업을 중단해야 할 처지다.
갈라파고스 규제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 치아미백제는 과산화수소 함량이 3%가 넘으면 의약품으로 구분되는데 해외에는 함량 규제가 없다. 안전·보건표지판은 알아보기가 힘든데도 과태료가 부과된다. 주요 주주와 거래시 1원 이상 모든 거래에 대해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낡은 규제도 많다. 방송시청 목적이 없는 TV 튜너 내장 모니터도 수신료를 내야 하고 행정기관이 대기오염물질 배출현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어도 관련 서류를 따로 내야 한다.
고용이 전경련 규제개혁팀장은 "정부가 규제개혁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는 만큼 이번에야말로 불합리한 규제들이 조속히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