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토요 Watch] 증시 움직이는 슈퍼개미

수백억 쥐락펴락 절대고수, 그들도 시작은 '미생'이었다



통신기 판매 등 회사 다니다 주식에 눈뜨고 업으로 삼아
철저한 분석통해 장기투자… '5% 지분 공시' 명함 얻어
진짜 고수들, 남의 돈 안쓰고 레버리지 통한 투자도 꺼려
과거보다 윤택해진 삶속에 사회환원으로 행복 찾기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주식 등의 대량보유 상황 보고서'는 하루에도 10개 이상씩 공시된다. 주식 등의 대량보유 상황 보고서는 주식발행 회사의 지분 5% 이상을 가진 법인 또는 개인이 보고한다. 공시내용 중에는 대량보유자에 관한 사항이 있는데 성명(명칭)에는 대부분 법인명이 적힌다. 개인의 이름이 있어도 알고 보면 발행회사와 관계된 대주주·특수관계인·임원 등이 많다. 간혹 보고사유에 단순 장기투자, 대량보유자 성명에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기재된 경우가 있다. 이 공시에 따라 보유자산을 계산해봤을 때 일반 개인이 100억원 넘게 가진 경우 슈퍼개미라고 의심해볼 만하다.


36세의 젊은 슈퍼개미 정성훈씨는 지난 2012년 3월29일 로만손 지분을 8.57%(127만3,312주)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그는 그해 6월 지분을 추가 매입해 10.69%(162만8,671주)로 늘렸다고 다시 한번 공시했다. 당시 로만손 주가는 4,000원선이었고 2년 반이 지난 현재는 1만8,000원선으로 거의 5배 가까이 올랐다. 현재 주가 기준 평가액은 약 293억원에 달한다.

'주식농부'로 유명한 슈퍼개미 박영옥씨는 조광피혁 10.3%를 보유했다고 공시했는데 조광피혁의 현재 주가가 13만원 이상임을 감안할 때 평가액은 900억원이 넘는다.

5% 미만의 지분을 가졌다면 지분공시를 할 의무가 없음에도 5% 이상의 지분을 가져가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투자패턴에 믿음이 있다는 것이고 리스크를 끌어안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지분을 5% 이상 가져 지분공시를 하면 이에 대한 양도세를 내는데 세금을 내고서도 가치주라고 판단하면 계속 보유하면서 엄청난 수익률을 달성한다.

5% 지분공시는 슈퍼개미의 명함이 되기도 한다. 슈퍼개미도 투자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는데 소속이 없어 자신을 소개하기 곤란할 때 'A종목을 5% 가진 개인투자자'라고 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정상적인 투자활동을 하는 슈퍼개미가 있는 반면 이를 활용해 일반개인을 상대로 투자금을 모아 사기를 치는 가짜 슈퍼개미도 있어 슈퍼개미들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한다. 주변 돈을 끌어모아 모두 한 업체에 투자해 5% 지분공시를 한 뒤 그 업체 말고도 다른 많은 업체의 주식을 가졌다고 일반투자자를 유혹해 투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들은 투자비법을 알려준다며 거액의 수수료를 뜯거나 보험상품 등에 가입시키는 식으로 개인투자자들의 돈을 착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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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한 고액 전업 투자자는 "진짜 재야의 고수들은 다른 사람의 자금을 모아 투자하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의 돈이 섞이면 손해를 봤을 때 손절매를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슈퍼개미들은 생각보다 소심해 은행에서 차입, 투자하는 레버리지도 꺼린다"고 전했다.

슈퍼개미들이 받는 오해 중 하나는 그들이 원래 부자였다는 것이다. 기자가 만난 슈퍼개미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통신기기 판매원, 평범한 직장인 등이 가치투자의 세계를 만나 슈퍼개미로 성장한 것이다.

김태석씨는 "PIC그룹이 처음 만들어질 때 '파트타임인베스트먼트클럽'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그곳에 모인 10~11명 중 2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평범한 직장인들이었기 때문"이라며 "간혹 주식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하면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는 그저 주식투자를 직업으로 삼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슈퍼개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개념을 알고부터다. 2007년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대표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증권사 고유계정을 운용하면서 PER와 PBR를 통한 가치투자를 도입했고 6년 동안 435%의 수익을 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56% 올랐다. 2007년 이 부대표는 그간의 성과를 '이채원의 가치투자'라는 책으로 펴냈고 이 책에 기술된 가치투자 전략은 많은 개미에게 훌륭한 주식 투자 입문서가 됐다. 1990년대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되면서 외국인들이 활용했던 PER 투자전략을 이 부대표가 성과를 통해 증명하고 대중화한 셈이다. 개미들은 실적이나 자산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은 저평가주를 찾아내기 시작했고 취재한 정보를 공유했다. 숫자로 한 투자의 결과는 개미들을 속이지 않았다. 이 대표의 투자전략은 그간 모멘텀 투자, 테마 투자에만 매달렸던 개미들의 투자 마인드에 일대 혁신을 이뤘고 가치투자연구소도 생겼다. 현재는 가치투자연구소에서 분파된 투자모임이 꽤 늘었다.

이들의 경우 정보는 공유하지만 투자 스타일은 제각각이다. 정보공유는 자신이 확인한 정보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일 뿐 선호 종목은 제각각이다. 성장주· 자산주·턴어라운드주 등 선호하는 주식이 다르다. 다만 굳이 한 가지 기준만을 고집하지는 않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처한다. 보유종목 수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잘 아는 5~7개 소수 종목에만 집중 투자하는 경우도 있고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40~50개 종목을 보유한 경우도 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반적으로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분산투자 전략은 기관투자가들처럼 자금 동원이 가능한 투자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일반 개인투자자들은 자금 동원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잘 하는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고수익을 추구하는 주식투자의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다"며 "슈퍼개미들은 각자 다양한 투자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이 보유한 투자 스타일의 위험수준과 기대수익률을 자기 패턴화하면서 꾸준히 고수익을 내는 노하우가 생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로또를 맞은 것처럼 보이는 슈퍼개미. 이들은 벼락부자 혹은 졸부가 아니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장기 투자하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이 번 돈을 잘 쓰기는 하나 헛되이 쓰지 않는다. 꾸준히 연구하고 공부해 연 10~30%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전략가다.

삶은 이전보다 여유로워지고 느려진 게 사실이다. 누구나 들으면 알 만한 서울 강남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에 거주하고 아이는 유명 사립학교에 다닌다. 외제차도 몇 대씩 있다. 일터에 나갈 때는 정장보다는 캐주얼 차림으로 나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상한가를 의미하는 빨간색 화살표 스티커가 붙은 모니터를 마주하는 것도 일을 하고 싶을 때다. 물론 이전의 삶과 비슷한 삶을 살며 티 나지 않게 처신하는 슈퍼개미도 있다. 라이프스타일 역시 개인 취향의 차이다. 일개미에서 슈퍼개미로 진화한 사람들. 이제 돈 말고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을 찾는다. 이석호(가명)씨는 재단을 설립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고 싶다. 슈퍼개미가 병원을 인수한 경우도 있다. 김태석씨는 "처음 주식투자를 했을 때 원했던 목표치는 이미 초과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최근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자산 불리기 외에 다른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 텐데 누구나 그렇듯 45세가 지난 지금도 꿈을 찾기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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