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설] 대선에 투영된 미국사회의 현주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W.부시 텍사스 주지사와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이 역사에 남을 대접전을 펼친 가운데 투표일 후 며칠이 지나도록 당선자가 정해지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현재 사회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의 번영에 만족은 하지만, 이것이 민주당 정권의 지속으로까지는 직결되지 않은 것이다.
클린턴 정권하의 미국은 경제적 번영을 향유해 왔다. 미국의 국익에 크게 걸림돌이 되는 안보 위기도 없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고어 후보는 유리한 입장에 서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번에 고어 후보가 당선되면 민주당 정권은 12년째 집권을 하게 된다. 2차 대전이라는 특수상황에 처했던 루스벨트-트루먼 정권을 제외하면 민주당이 12년 연속 정권을 잡기는 처음이 되는 셈인데, 이것이 장기집권을 싫어하는 민주주의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공화당의 부시 후보는 변화를 추구하는 목소리를 흡수했다. 과거에 온건파와 보수파간 분열로 인해 대선에서 패배한 공화당도 이번 선거에서는 부시 후보아래 결속을 굳혔다. 클린턴 정권의 연이은 추문도 부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두 후보의 자질에 대해 결정적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점도 접전의 요인이 됐다. 고어 후보는 정책 과제에 정통하고 안정감도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면모에서 점수가 깎여 많은 호감을 사지 못했다.
반면 대범한 인격을 갖춘 부시 후보는 호감을 사기는 했지만 정책면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양 후보 모두 저명한 정치가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지명도 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대선에서의 접전이 미국 국론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어 후보는 클린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민주당내에선 중도파에 속하는 정책 노선을 밟고 있다.
부시 후보도 `배려 깊은 보수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물론 양 후보간 구체적인 정책 차이는 있지만 선거 과정에서 강조된 정도로 큰 차이는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 아래 유권자의 한 표 한 표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유권자의 수백표 차이로 결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표 차이가 적더라도 승자와 패자는 절대적으로 갈리는 것이 바로 선거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11월9일자>입력시간 2000/11/1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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