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광작농 許拱의 가르침

안종운 농업기반공사 사장

조선 후기 허공(許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친지에게 구걸해 살아가던 아버지가 죽자 허공은 이제까지 하던 글공부를 단념하고 농사를 짓기로 결심한다. 허공은 의관을 벗어던진 뒤 적삼에 잠방이를 걸치고 농부에게 쟁기질을 배워 담배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치산(治産)을 위해 귀리죽만 먹어가며 지독할 정도로 농사일에 매달린 결과 스스로 약속한 10년 뒤 만석꾼의 꿈을 이룬다. 위의 이야기는 조선 후기 한문 단편소설 ‘광작(廣作)’의 줄거리다. 광작은 조선 후기 수리시설의 확충과 이앙법의 보급 등으로 한명의 농민이 이전과 다름없는 노동력으로도 훨씬 넓은 면적의 농지를 경작하게 된 것을 말한다. 이 시기 광작과 유사한 내용의 소설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남산골 선비 최생이 고향인 청주로 돌아와 10여 결이나 되는 넓은 농지를 자영해 거부(巨富)가 된다는 ‘귀향(歸鄕)’이나 젊은 부부가 살림을 모으기 위해 10년간 부부 생활을 전폐하며 농사 등에 매진한 결과 갑부가 된다는 ‘부부각방(夫婦各房)’ 등이 모두 광작농이 축부를 이룬 ‘성공 스토리’를 다룬 것이다. 조선 후기부터 수 백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21세기 한국이지만 농업 경제의 궁극적 원리는 똑같다. 경작 농지의 규모를 확대하면 생산비는 감소되고 수익은 증가하기 마련이다. 현대판 ‘광작’은 지난 88년부터 정부에 의해 영농규모화사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추진돼왔다. 지난해까지 총 4조 6,531억원을 지원한 결과 무려 13만6,504㏊의 농지를 집단화시켰다. 쌀수입 개방에 따른 저가의 중국, 미국쌀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규모화사업을 통해 육성된 전업농의 대규모 경영면적과 특화된 브랜드 쌀만이 외국 쌀과 맞설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조선 후기 광작은 대부분 기존의 지주 계층에 의해 이뤄졌지만 규모화사업은 젊고 근면한 농업인이라면 누구든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어렵지 않게 농업경영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제는 경영형 부농이 되기 위해 부부가 각방을 쓰고 10년 동안 귀리죽을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뜻있는 농업인이라면 ‘21세기 버전’ 허공의 성공담에 도전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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