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휴대폰 강국, 그 비결] <2> 연구실은 밤이 없다

'더 빠르게 더 좋게' R&D열기 후끈<br>'빅3' 연구개발 인력 1만여명 밤낮없이 무한경쟁<br>품질 제고·개발기간 단축위해 프로세스 수술까지<br>"연구원 사기 끌어올려라" 최고의 근무환경 지원


‘보다 빠르고, 더 좋은 제품(Faster and Better)’ 팬택 중앙연구소 연구3실을 드나드는 사람은 누구든 입구 머리맡에 붙여진 큼직한 영문 구호를 한 번씩 읽고 지나가야 한다. 단순명료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가만히 새겨보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에 쫓겨 서두르기만 하면 품질에 소홀해지기 쉽다. 반대로 품질만 고집하다 보면 남보다 뒤처지기 십상이다.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이런 욕심이야말로 ‘메이드 인 코리아’ 휴대폰을 세계 최고의 명품 반열에 올려놓은 비결이다. 국내에는 삼성전자ㆍLG전자ㆍ팬택계열 등 이른바 ‘빅3’를 합쳐 휴대폰 연구개발(R&D)에 투입된 인력만 해도 1만여 명이 훌쩍 넘는다. 이들은 급여와 복지, 근무환경 등 모든 면에서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밤낮없이 ‘시간’과 ‘품질’싸움을 벌인다. 정태현 팬택 연구3실장은 “스피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한 팀이 여러 개의 휴대폰 모델을 동시에 진행하고, 하나의 모델을 여러 팀이 동시에 개발한다”며 “이것이 개발기간을 크게 줄이는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이 회사가 지난해 세계 최초의 광학줌 카메라폰으로 출시한 ‘S4’가 대표적인 사례다. 보통 휴대폰 1개 모델을 개발하려면 디자인 시안부터 시작해 단말기 케이스 제작 검토, 하드웨어 회로 디자인, 소프트웨어 탑재, 이동통신사 테스트 등 5~6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통 이를 마무리하는데 10~13개월이 걸린다. 하나의 단계가 마무리돼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직선형(Linear) 프로세스다. S4 프로젝트는 이 프로세스에 과감한 수술을 가했다. 국내외 경쟁사들이 비슷한 시기에 광학줌 카메라폰 개발에 착수한 마당에 10개월 이상을 끌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선 디자인과 케이스, 하드웨어 등 3개팀이 동시에 개발에 착수했다. 이들이 작업을 채 마치기도 전에 소프트웨어 팀이 개발에 합류했다. 휴대폰 세트도 넘겨받지 못한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팀은 PC와 다른 휴대폰 모델을 이용해 개발을 진행해 나갔다. 이 같은 병렬(Parallel) 프로세스가 숨막히게 가동된 끝에 S4는 개발 착수 후 불과 6개월여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구원이 곧 재산인 휴대폰 업체들로서는 연구원들의 사기를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첨단의 연구시설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각종 복지 프로그램과 휴식ㆍ스포츠 시설, 상담실, 밤샘 연구에 매달리는 직원을 위한 쾌적한 수면실까지 연구원 사기진작을 위한 회사 측의 노력도 눈물겹다. 7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LG전자 단말연구소. 오후 5시가 되자 경쾌한 음악과 함께 수천명의 연구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퇴근시간도 잊어버리기 일쑤인 연구원들을 회사가 반강제로 퇴근시키는 이른 바 ‘기분 좋은 날’이다. 연구실 곳곳에 설치된 TV를 통해 귀가하는 동료들과 텅 빈 연구실ㆍ주차장 등을 비춰주며 퇴근을 종용하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책상에 붙어있는 ‘독종’ 연구원들도 적지 않다. 같은 시간 대강당에서는 ‘멘토링’ 프로그램 수료식이 열리고 있었다. 선배들이 신입사원과 1:1로 짝이 되어 3개월간 적응을 도와준 뒤 졸업하는 날, 무대 위와 아래를 가득 메운 수백명이 막 햇병아리 딱지를 뗀 새내기 연구원들을 환한 얼굴로 축하해 준다. LG전자 단말연구소의 R&D지원팀을 맡고 있는 김봉남 상무는 “연구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인력 충원은 물론 이벤트ㆍ동호회 등 다양한 지원방안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수시로 연구소를 찾는 김쌍수 LG전자 부회장도 연구원들의 사기진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부쩍 휴대폰 사업에 관심이 많아진 최고경영자(CEO)가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매번 연구원들에게 저녁을 사주며 격려해주는 탓에 연구원들은 이제 김 부회장을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벌써 8년째 사내 명예박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임원이 ‘멘토’가 되어 1년간 업무와 공부를 병행하며 박사논문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름은 명예박사지만 논문이 통과되면 적어도 사내에선 실제 박사와 똑 같은 대우를 받는다.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다. 연구원들은 저마다 원하는 출퇴근 시간을 미리 정한다. 밤샘 근무가 잦은 연구원들이 자신의 리듬에 맞춰 근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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