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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80년대는 서양의 기술이나 사상을 마치 정답처럼 받아들여 답습만 해도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정답으로만 문제를 풀어나갈 수가 없는 시대가 됐어요. 특히 이 세상에는 절대로 똑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데 과거의 정답으로 미래를 해쳐나갈 수 있겠어요? 인문학에는 정답이 없지만 복합적인 사고력을 키워주죠. 여러분은 지금 인문학적 소양과 통찰력으로 해답을 찾아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죠?”
지난 3일 늦은 7시 성북구에 위치한 신일고등학교 소강당에는 70여명의 학생들이 박홍순 작가의 고인돌 강좌 ‘미술로 읽는 세계사’를 듣기 위해 모였다. 이번 강좌는 도봉도서관이 인근 학교에 독서 및 인문학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박홍순 작가는 기원전 1만 7000년전 라스코 동굴벽화 ‘들소사냥(BC 17,000)’을 소개하면서 미술작품을 통해서 역사를 읽는 노하우를 소개해 나갔다.
“역사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지요. 일례로 남자와 여자를 한번 비교해 볼까요? 지금은 남자가 훨씬 더 근육질에 몸집도 크지만 구석기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남자는 수렵, 여자는 채집으로 노동분담이 이뤄졌다고 배웠죠. 하지만 수천만년 전 밀림 속 과일나무는 열매가 꼭대기에 열려요. 요즘처럼 과수원에 과일이나 산딸기를 따는 우아한 모습을 상상하면 안돼요. 정글을 탐험하는 TV프로그램에서 바나나 나무에 능숙하게 올라가는 사람은 병만 족장이죠. 구석기 시대에는 여자들이 그 작업을 한거예요. 그러니까 그때는 모두 ‘여자 김병만’이었어요. 여자들의 능력이 축소되고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도가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학생들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듣는 듯한 표정으로 강의에 빠져들면서 역사의 해석을 위해선 인문지식과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해나갔다.
박 작가는 구석기시대 비너스상을 보면서 여자가 중심이 된 모계사회가 성립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나갔다. “요즘처럼 도덕적인 잣대가 아니라 다산이 중요했던 때라서 여성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기입니다. 출산을 맡은 여성이 가족을 거느리는 게 자연스러웠죠.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 상은 지금 알고 있는 팔등신의 미녀상이 아니죠?”
그는 국가의 형성과 야만의 등장으로 전쟁이 벌어지게 된 배경을 아시리아 ‘아슈르바니팔(BC645)’ ‘성을 공략하는 병사(BC645)‘ 등을 보면서 설명해 나갔다.
박 작가는 교과서 속의 정답을 넘어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은 인문학 공부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러분은 이제 곧 수능을 준비하면서 논술을 대비해야하는데 논술은 외워서 쓸 수 있는 게 아니죠. 인문학적 사고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역사의 개별적인 사건에 대한 생각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과정이 바로 인문학 공부입니다. 또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 때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합니다.” 이번 강좌는 총 3회로 1강. 인류의 시작과 문명의 뿌리, 2강. 서양과 동양, 3강. 혁명과 공황 그리고 현대의 성찰 등으로 구성됐다.
교내 강의를 추진한 이 학교 모상경 1학년부장 교사는 “이과 전공학생들에게도 늘 예술과 미술이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취미가 예술 등 인문학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면서 “교내에서 작가들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도봉도서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