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

"大-中企 수직구조 넘어야 창조적 명품 나와"<br>대기업에 줄서기 벗어나 CEO가 직접 개발 참여등 벤처의 창의성 극대화해야



"기존의 수직계열화 산업구조를 과감히 넘어서야 한국에서도 아이폰 같은 창조적 명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벤처기업이 앞장서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고 미래 10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벤처생태계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황철주(51ㆍ사진)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구조는 이제 그 운명을 다했다면서 "현재와 같은 앵벌이식 산업구조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또 벤처는 벤처다운 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앞세워 경쟁력 없는 제품을 만드는 구태의연한 경영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가 임기 중 주력하겠다는 것도 벤처기업만의 성공모델을 만드는 문화적 토양을 다지는 일이다. 그는 "현재의 산업구조로 인한 여러 문제는 벤처기업이 자초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며 "새로운 경제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벤처기업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창조적 명품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근 스마트폰 열풍으로 대변되듯이 창의성 위주로 비즈니스 마인드를 바꿔야 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벤처의 역할도 과거보다 커지고 있습니다만. ▲그동안 한국의 기업문화는 남이 이미 갖고 있던 제품을 개선하고 좀더 싸게 양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직계열화 위주로 산업구조가 만들어졌고 창조성도 사라졌다고 봅니다. 수직계열화는 지금까지 고속 성장의 기반으로 작용했지만 이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봐야 합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10년 후에도 시장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적 명품입니다. 덩치를 키우고 단순히 이익을 창출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창조적인 명품을 만드는 목적으로 기업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 같은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경제주체는 바로 벤처인입니다. 중소ㆍ벤처기업들이 창조적인 명품을 만들고 대기업과 협력해 세계시장으로 나가야 비로소 대한민국이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벤처기업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창조적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아이폰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는 애플의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설계, 개발하고 인터페이스를 판단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CEO가 직접 나서 모든 과정을 챙기는 것과 연구원이 만든 제품은 처음부터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구조상 대기업은 어렵지만 벤처는 가능하죠. 벤처기업은 연구개발자 출신 CEO가 직접 개발도 하고 생산ㆍ마케팅도 하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명품을 빨리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리더가 더욱 구체적인 방향과 방법을 지시해야 하는데 한국은 이 같은 문화기반이 부족합니다. 창조적으로 일을 해온 경험이 있는 리더가 활동하는 벤처기업만이 유일하게 이 같은 문제를 고칠 수 있다고 봅니다. -벤처기업의 자생력도 시급한 개선과제라고 봅니다. 아직까지 연매출 1조원을 넘는 중견 벤처도 미미하고 예비 벤처인의 롤모델로 삼을 만한 기업이 적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우리 산업계에서 대기업이 30%의 문제를 안고 있다면 나머지 70%는 중소기업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봅니다. 중소ㆍ벤처기업들이 하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귀족의 대우를 받기 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기존 제품을 더 싸게 만들어 스스로 대기업에 줄서기를 하는 것이죠. 대기업이나 정부가 바꿔주기를 기다리다간 너무 오래 걸립니다. 지금의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짜고 해외시장에 도전해야 합니다. 모든 중소기업인들의 최종목표는 대기업 오너이고 경영방식도 대기업 오너가 하는 대로 쫓아갑니다.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이 목표와 방법을 잘못 잡고 있는 것입니다. 벤처기업은 벤처에 맞는 문화와 시스템을 찾아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과거의 벤처거품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벤처 하면 아직도 부정적인 시각이 떠오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장이 맛있을 수록 구더기가 많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벤처이기 때문에 잘못됐다'는 시각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어느 분야나 성장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고 봐야 됩니다. 하지만 세계시장을 리드하는 한국의 정보기술(IT) 경쟁력도 2000년대 초반 활약한 벤처기업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거 소니의 워크맨이 일본의 IT붐을 일으켜 일제 가전제품을 세계로 확산시켰다면 이 같은 워크맨 신화를 무너뜨린 계기는 한국의 벤처기업이 만든 MP3플레이어입니다. 또 외환위기 당시 테헤란 벤처기업들이 수많은 휴대폰 기술을 만들었고 지금 한국산 휴대폰은 워크맨보다 4~5배나 많은 파급효과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TVㆍ배터리ㆍ카메라ㆍ인터넷 등 모두가 IT기술의 집약체입니다. MP3플레이어와 휴대폰으로 이어지는 기술혁신의 사슬을 이어간 주역이 바로 한국의 벤처기업입니다. 물론 이는 당시 벤처붐이 일어났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많은 벤처기업들이 대기업 납품단가 문제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업이든 이익을 내려고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죠. 다만 중소기업이 납품가격을 내릴 수 있도록 계획에 맞춰 연구개발 여력과 시간을 주지 않고 납품가를 인하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낸 것은 훈련방법ㆍ과학기술 등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의 인프라는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입니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없다면 한번의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 위의 성과 같습니다. 대기업 경영자들은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예컨대 형제 간에 빵을 얼마나 나눠먹느냐는 것은 형님의 인품, 형님의 그릇에 달린 겁니다. -올바른 벤처문화가 확립되고 벤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뒷받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경제 성장의 툴을 국내에 두지 말고 글로벌 활동을 위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국내 대ㆍ중소기업뿐 아니라 국내 벤처기업과 해외 대기업과의 상생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죠. 지원여력을 여러 기업에 나누기보다 해외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벤처를 선정해 글로벌 R&D, 수출 금융 및 마케팅 분야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벤처도 새로운 물이 들어와야 하지만 젊은이들이 안정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벤처기업인이 나쁘다라는 생각이 없어져야 합니다. 사회는 과감히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중국과 미국은 창업할 때 아이디어가 있으면 개인은 10%가량만 대고 정부가 돈을 지원합니다. 고용과 이익을 창출하니까요. 마지막에 벤처캐피털이 합류하면서 신산업이 탄생합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개인이 알아서 다 처리하라고 합니다. 기업인은 돈도 있어야 되고 아이디어ㆍ기술ㆍ금융지식까지 있어야 합니다. 제일 잘하는 것에 집중해도 세계에서 성공할까 말까인데요. 금융은 특히 담보와 연대보증 관행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고 관리를 한다면 기업인은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데 은행은 보증을 세워놓고 끝입니다. 이렇게 해서 실패하면 도전했던 젊은이만 사기꾼이라고 욕을 먹는 구조입니다. 벤처는 10개 중 3개 성공하면 대박일 정도로 입니다. 그런데 1개 성공하고 9개 실패했다고 '벤처는 사기다'고 하면 누가 벤처하겠습니까. 근본부터 되돌아봐야 합니다. ◇약력 ▲1959년 경북 고령 ▲1985년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86년 한국 ASM 근무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 창립 ▲1995년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1998년 과기부 기술개발기획평가단 위촉위원 ▲1999년 진공학회 부회장 ▲2005년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07년 한국디스플레이 산업협회 부회장 ▲2009년 한국물리학회재정위원회 부위원장 ▲2009년 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 ▲2010년 벤처기업협회 회장
뚝심경영으로 6년 연속 '벤처 천억클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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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철주 회장은

황철주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지난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하고 이민화 기업호민관,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과 함께 초창기 벤처붐을 이끈 벤처 신화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1,7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2005년 이후 6년 연속 벤처 천억클럽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부분 창업 초기를 넘기지 못하고 명멸을 거듭하는 벤처 업계에서 주성엔지니어링이 2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며 성장하는 것은 드러내지 않고 소신과 뚝심을 펼치는 황 회장의 특유의 '외유내강'형 경영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초창기 반도체제조장비를 삼성에 납품하면서 성장하다가 거래관계가 끊기면서 2002년에는 매출이 기존의 절반 수준인 220억원까지 떨어졌다. 이때 황 사장은 과감히 기존 거래를 단념하고 신제품 개발을 통해 신규 거래선을 창출했다. 900억원의 적자를 낸 상태에서도 연구개발비를 50억원에서 55억원으로 늘이는 등 정면돌파하는 뚝심을 보여줬다. 결국 LCD제조장비를 개발한 주성의 매출은 2003년 270억원에서 이듬해 1,600억원으로 늘었다. 현재 주성은 LCD제조장비에 이어 태양전지 제조장비도 개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으며 매출의 60%를 수출로 올리고 있다. '벤처기업은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 세계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지론은 이때 자리잡은 것이다. 활동무대를 세계로 보는 만큼 황 회장은 직급과 상관없이 모든 직원들을 '선수'라고 부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황 회장의 임기 중에는 벤처기업이 대기업 의존관행을 벗어나 주도적인 수출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소신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황 회장은 벤처기업회장직을 수락하면서 두 가지 활동을 구상했다. 하나는 벤처기업들이 자체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인수합병(M&A), 기술 및 마케팅 융합, 자금지원 등을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드는 것. 그리고 소규모 벤처기업 경영자들이 큰눈을 가질 수 있도록 '1일 협회장'기회를 주는 것이다. 황 회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벤처기업 경영자의 의식개혁"이라며 "세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목표설정과 방법을 함께할 수 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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