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16일] 프란체스코 다티니


[오늘의 경제소사/8월16일] 프란체스코 다티니 투명경영을 위한 변호사 자문, 영업계수 일일관리, 성과분석과 신상필벌…. 현대 대기업이 아니라 14세기 말 피렌체를 근거로 유럽전역에서 활동한 한기업의 얘기다. 요즘에도 보기 드문 경영기법을 650여년 전에 선보인 사람은 프란체스코 다티니(Francesco Datini). 꼼꼼히 기록한 15만통의 편지와 500여개의 장부, 300여개의 합작투자 계약서에 경영 전모가 담겨 있다. 다티니는 불운 속에서 자랐다. 1335년 피렌체 인근 프라토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13세때 흑사병으로 부모·형제·자매를 모두 잃었다. 상점의 견습사원으로 들어가 장사를 익힌 후 아비뇽으로 이주, 무기류와 섬유·보석 사업까지 손을 댔다. 한창 돈을 벌던 1382년 다티니는 갑자기 쫓겨났다. 교회의 정통성 경쟁에서 로마 편에 섰던 피렌체 출신이라는 이유로 재산을 잃고 아비뇽에서 축출된 그는 고향에 돌아와 사업을 재개, 1396년에는 모직물을 생산하는 공장을 세워 대박을 터뜨렸다. 연구개발로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연보라색 직물을 발매한 덕분이다. 2년 후에는 피렌체에 은행을 세우고 9개의 국외 지점을 깔아 모든 물건을 다뤘다. 이탈리아 최고의 상인으로 떠오른 그의 원칙은 철저한 위험분산과 ‘신을 섬기되 돈을 벌자’는 신조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성직자 예복에서 노예까지 취급했다. 저택을 교회로 개조하고 성화 제작을 후원하는 신앙심과 달리 돈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세평 속에 다티니는 1410년 8월16일 75세를 일기로 사망했어도 오래도록 배울 만한 기업가로 남았다. 자식이 없었던 탓인지 전재산 10만 플로린을 순례자 지원과 병자 치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남겼기 때문이다. 선행을 기려 당시에 세운 동상이 아직도 프라토 시내에 있다. 입력시간 : 2007/08/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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