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면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다. 언 몸을 따뜻하게 녹여줄 뜨거운 국물들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차관보가 "이렇게 추운 겨울날이면 서울의 순두부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다는 뉴스가 지난 월요일자 지면을 장식했지만 정작 겨울을 녹이는 메뉴들은 따로 있다. 뜨겁고 넉넉한 국물이 목젖을 타고 넘어가면 동장군도 겁날게 없는 탕ㆍ국 요리 3인방과 이들을 만들어 파는 숨은 맛 집들을 찾아봤다. /편집자주 ● 을지로 입구 '동이 설렁탕' 국물은 센 불 고기는 약한 불 사용 내로라는 미식가들도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명확히 아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설렁탕과 곰탕간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우선 곰탕은 사태ㆍ양지머리 등의 정육과 양ㆍ곱창 등의 내장을 물에 넣고 끓이다 반쯤 익었을 때 무ㆍ다시마를 넣고 다시 끓인 것으로 기름진 맛이 특징이다. 그래서 '고기를 푹 곤 국'이란 의미의 '곤국'이 '곰국'이 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설렁탕은 사골ㆍ도가니ㆍ쇠머리ㆍ우족 등의 뼈와 양지머리ㆍ사태 등의 정육, 우설ㆍ지라ㆍ허파 등의 내장을 넣고 하루 정도 푹 고아 끓인 것으로 곰탕보다 국물이 뽀얗고 진한 편. 따라서 곰탕은 국물에 기름기가 많고, 설렁탕은 기름기가 적다. 송파구 석촌동의 본가설렁탕에서 독립, 을지로입구 SK텔레콤 건물옆에 문을 연 '동이설렁탕'의 김형용사장은 "예전에는 설렁탕이 나이 든 분들이 좋아하는 메뉴였지만 요즘에는 젊은 고객들도 크게 늘었다"며"아마도 조리법의 발달로 누린내가 없어져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집 설렁탕의 특징은 대형 가마솥에서 뼈를 10시간 이상 고아 국물이 진한데 뼈는 국내산 사골과 호주산을 섞어서 쓰고 있다. 동이설렁탕에서는 뼈를 고을 때 황기 등 7가지 한방 약재를 함께 넣어 누린내를 없앤다. 김사장은 "탕을 끓이기 전에 뼈를 10센티 길이로 잘라 물에 담궈 핏물을 5시간 이상 빼야 한다"며"국물을 낼 때는 강한 불을 쓰고, 고기는 약한 불에서 삶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기를 약한 불에서 삶는 이유는 센 불에서 삶을 경우 고기 맛이 떨어지기 때문. 또 고기 삶을 때 마늘ㆍ파ㆍ생강 등을 넣고 함께 삶아 누린 맛을 없앤다. 김사장은 가정에서 끓인 설렁탕과 전문점에서 고아 낸 설렁탕이 맛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가정에서는 조리하는 불의 세기가 약해 진국을 빼내는데 한계가 있다"며"가정에서 설렁탕을 맛있게 먹으려면 밥을 반공기만 먼저 넣어 말아먹은 다음 나머지 반공기를 말아 먹는 것도 한 방법"이락 말했다. 설렁탕 가격은 6,000원, 꼬리곰탕은 1만원. ● 무교동 '터줏골' 북어국 통북어 두들겨 작두로 썰어 끓여 1968년에 진인범씨가 창업한 무교동 터줏골은 오로지 북어국 하나로만 승부를 하고 있다. 가게를 연 진씨는 나이가 많아 쉬고 있고, 그의 아들 진광진, 진광삼 형제가 11년전부터 가게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이 집은 광화문 시청일대의 직장인들 사이에선 술 먹은 다음날 반드시 들러 속을 푸는 해장국집으로 유명한데, 그 맛을 잊지 못한 단골들은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도 귀국하면 반드시 들르곤 한다. 이 집에서 사용하는 북어는 원양산이지만 강원도 고성덕장과 묵호 집하장 일대에서 말린 것을 가져다 쓰는데 연간 단위로 계약, 1년에 쓰는 양이 8만~10만 마리 정도로 엄청나다. 진광삼 사장은 맛을 내는 비결에 대해 "비법은 따로 없고 사골을 11시간 끓인 국물에 뼈를 발라내지 않은 통북어를 사용하고, 양념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쓴다"며 "북어채를 쓰면 녹아 없어지기 때문에 통북어를 두들겨 작두로 직접 썰어 넣는다"고 말했다. 이 집은 12시가 넘어서 가면 10분 정도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영업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며 공휴일은 오후 5시까지. 메뉴는 한 가지에 가격은 5,000원. 무한 리필 가능하다. 위치는 중구 다동 코오롱빌딩 건너편. ● 양재역 부근 '자인뭉티기' 해장국 도축장서 가져온 최고급 선지 사용 선지에는 체내에 흡수가 용이한 철분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국 안에 들어 있는 우거지와 무, 콩나물에는 비타민, 무기질, 펙틴, 섬유소가 풍부해 영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 콩나물에 함유돼 있는 아스파라긴산은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생성을 도와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국으로 적당하다. 종로구 산업과에서 발행한 '종로 명가 명품'에 따르면 선지해장국을 잘 하는 집으로는 청진동 일대의 청진옥, 청일옥 등 해장국집들이 유명하다. 그 이유는 지금의 서울 시청에 해당하는 한성부가 지금의 종로구청 자리에 있었고, 그 주위에는 나무를 팔고사는 장이 새벽에 열려 나무꾼들을 겨냥한 해장국집이 생겨났기 때문. 강남의 해장국집으로는 양재역 2번 출구 강남문화센터 뒷골목의 '자인뭉티기'가 명성을 얻고 있다. 이 집의 상호중 '뭉티기'는 대구지방에서 듬성듬성 크게 썰어낸 생고기를 지칭하는 방언으로 간판 메뉴는 생고기인데 워낙 선도를 중요시하는 집이니 만큼 '영양 찰선지국'의 맛도 좋다. 이 집의 선지는 중간 유통단계를 생략하고 도축장에서 직접 가져와 선도가 높은데다 24시간 이상 우려낸 사골 국물에 콩나물과 토란대, 고사리, 양을 넉넉히 넣어 끓여낸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기호에 따라 후추와 고추기름, 청양 고추절임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이무섭 자인뭉티기 대표는 "해장국 집이 많은데다 소 한마리에서 나오는 선지가 40~50ℓ뿐이어서 일반 소비자가 신선한 선지를 구입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선지해장국은 이름 난 전문점에서 맛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선짓국은 7,000원, 뭉티기는 150g 1인분에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