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경제도약, 신뢰회복이 우선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한국 사람은 계약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할 때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사람은 상황이 바뀌면 계약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별로 없을 뿐더러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물론 이런 평가는 일부 외국인이 우리를 보는 시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공감이 가는 장면에서는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약속은 어떤 경우에나 지켜야 한다. 지키기 쉬울 때도 지켜야 하고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약속의 본질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래의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당초부터 능력범위 내에서 약속을 해야 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기업도 원금과 이자를 계약대로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신뢰의 기본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trust)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프라 스트럭처(하부구조)로서 이것이 결여된 사회는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ㆍ중국, 동남아 국가들을 대체로 신뢰가 부족한 사회라고 말한다. 이는 이 지역에서 앞으로 더 이상 비약적인 경제발전은 어렵다고 주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계약이 잘 지켜지지 않고 신뢰가 부족한 사회이기 때문에 고도의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본조달이 어렵다는 것이다. 요즘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잘나가는 것을 보면 그의 주장이 반드시 옳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10년 전만 해도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외환위기ㆍ금융위기를 맞아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나라도 근래에 외환위기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국가 신용도는 아직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았던 원인도 금융시장에서 기업 및 금융기관들의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예금자는 은행을 믿지 못하고 투자자는 기업을 믿지 않는다. 은행은 기업을 못 믿는다. 심지어 정부의 정책도 믿지 않고 정치인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따라서 예금자나 투자자로부터 은행이나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 나아가 한국 정부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에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환위기ㆍ금융위기이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신뢰 상실이다. 불신이 금융시스템을 파괴한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더욱 황당하다. 정치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기보다 국민을 우롱한다. 선거공약은 그때그때 표를 얻기 위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 선거공약을 지키겠다는 정치인도 별로 없으며 그런 선거공약을 그대로 믿는 유권자도 드물다. 심지어 법원에서조차 선거공약은 안 지켜도 위법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선거공약은 법으로 해결할 문제라기보다 도덕적ㆍ정치적 의무일 뿐이라는 것이다. 당초에 선거공약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무리한 장밋빛 공약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능력범위 내에서 가능한 과제들을 들고 나와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정치 및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것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 때문인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도 선거공약 중에 지킨 것도 있지만 지키지 않은 것도 많다. 지킬 만한 것은 지키고, 지키고 싶지 않은 것은 지키지 않은 것 같다. 그냥 해본 소리라서 다 지킬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노 대통령은 집권기간 중에 경제성장률을 연평균 7%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경제성장률은 4.2%에 그쳤다. 반면 한반도 밖의 세계 경제는 전에 없는 호황을 누렸다. 우리의 경쟁국들은 대부분 높은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우리나라만 경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이 과연 약속한 경제성장률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최근 우리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도 가계ㆍ기업 및 외국인 투자가들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 선진경제로 발돋움하기 위해 시급한 과제는 어떻게 신뢰를 회복하느냐 하는 것다. 앞으로 새 정부, 새 지도자가 들어서면 사태가 다소 호전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없지 않다. 새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스스로 약속을 지킬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약속 지키는 사회로 만드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경제가 성장을 회복하고 선진경제로 도약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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