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민심 달래기 고육책…내용수정 여부가 관건

거센 비난여론 의식 "검토시간 부족" 이유 일단 시간벌기<br>美와 물밑협상…'광우병땐 수입중단 명문화'등 모색할듯

14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김종훈(왼쪽) 통상교섭본부장이 국회 통외통위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보완대책을 위한 청문회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최종욱기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의 신호탄이 될 새 수입개정조건의 장관 고시가 늦춰지게 됨에 따라 야당 등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던 정부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정부는 입법예고 마감이 임박해 수백건에 달하는 의견이 쏟아져 들어옴에 따라 이를 검토하기 위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시 연기 이유로 설명하고 있지만 졸속 협상과 성급한 고시에 대한 거센 비난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번 고시 연기가 단순한 시일 연기에 그칠 것인지 여부다. 단순한 실무작업 때문에 시일이 늦춰지는 것이라면 이번 고시 연기에는 별 의미가 없지만 내용을 수정한다면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고시내용에 반영할 만한 내용이 있는지 여부는 들어온 의견을 검토해봐야 된다”는 입장으로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장관 고시 왜 연기됐나=지난 13일 오전까지만 해도 농림수산식품부 등 정부는 “일정대로 고시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내에서 새 수입위생조건은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5월15일에 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 한미 협의 합의요록에 명시된 내용이다. 이 때문에 고시일이 법적으로 못박혀 있지는 않지만 정부는 고시 예상시점을 15일로 밝혀왔다. 하지만 13일 오후 들어 정부의 입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에 참석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농식품부 등과의 협의를 통한 고시 연기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도 “고시일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15일에 고시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연기’라는 말을 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면서 “의견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고시를 할 예정”이라며 이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입장을 나타냈다. 청와대에서도 “고시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말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은 14일 “물리적으로 15일 고시는 어려울 것 같다”며 길게는 열흘간 고시 일정을 연기할 계획임을 밝혔다. 농식품부 대변인도 이와 관련, “지난 20일 동안 접수된 330여건의 의견 가운데 13일 하루 동안에만도 300건 이상이 접수돼 이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고시 강행에서 한발 물러난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 부족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법적 기한이 없는데 굳이 장관 고시를 서둘러 강행해 국민정서를 악화시키기보다는 미국 수출작업장 점검을 위해 출국한 특별점검단의 보고내용 및 각계의 의견수렴에 신중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여론을 수습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또 야3당이 장관 고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본안인 행정소송을 제출하고 재협상 촉구결의안을 내기로 하는 등 강경 태세를 보이고 있어 정부로서도 최악의 고비를 넘기기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던 것으로 풀이된다. ◇ 고시내용 달라질까=고시가 비록 연기되더라도 새 수입위생조건을 바꿀 만한 ‘과학적 근거’를 갖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이상 내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원론적인 입장이다. 농식품부 대변인도 “4월22일부터 5월13일까지 접수된 의견 330여건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장관 고시가 단순한 기일 연기에 그칠 경우 야당과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잠재우지 못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 기간 동안 미국과의 물밑협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고시 연기 기간이 당초 거론됐던 3~4일 수준에서 1주일~열흘로 늘어난 점도 이 같은 짐작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당초 물리적인 시간 부족을 이유로 들던 정 장관도 “미국으로 파견된 현지 점검단의 보고내용을 참조하고 국내 수입쇠고기 검역 시스템도 다시 점검한 다음에 장관 고시를 하겠다”고 한발 나아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때문에 국민 여론 무마 차원에서 가령 미국 측도 수용했던 ‘광우병 발생시 수입중단 조치’에 관한 부분을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고시내용에 명문화하는 방안도 이 기간 동안 시간을 들여 검토할 수 있는 셈이다. 농식품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고시내용 변경은 곧 미국과의 재협상을 의미하므로 현재로서는 명백한 과학적 근거 없이는 내용 개정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미국과 협의를 통해 양측이 합의할 경우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원론적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고시 후 수입일정은=정부의 계획대로 농식품부 장관이 이달 안에 새 수입조건을 고시하면 지난해 10월5일자부터 중단됐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검역은 7개월여 만에 즉각 재개된다. 일단 가장 먼저 시중에 풀릴 물량은 지난해 검역 중단으로 컨테이너야적장 등에 발이 묶인 5,300여톤. 당시 미국에서 한국행 수출 검역까지 마친 후에 검역 및 선적이 중단된 7,000톤 역시 고시 공포와 함께 한국행 배를 타 선박 운송 기간을 감안할 때 오는 6월 초쯤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 이 물량은 모두 뼈 없는 30개월 미만 살코기들로만 이뤄져 있기 때문에 검역에 걸리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을 것으로 예상된다. LA갈비와 사골ㆍ꼬리 등의 부산물도 장관 고시로 합의문이 효력을 발휘하는 즉시 도축되기 시작해 다음달께 한국 땅을 밟게 된다. 본래 업계에서는 새 수입조건에 따른 계약물량 가운데 선박편 도착시점을 다음달 중순께로 예상했지만 고시 일정이 늦춰지는 만큼 다음달 하순은 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달 말 고시가 공포되고 1만2,000톤의 살코기 물량의 국내 유통 길이 열린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선뜻 쇠고기 유통에 나설 업자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고시가 되더라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반감이 높은 상황에서 선뜻 총대를 멜 업자가 나타날지는 불투명하다”며 “당장 현금이 부족한 영세업체가 아니라면 당분간은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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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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