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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0대 핀테크기업에 한국은 단 한 곳도 없어
규제 OECD 평균만 돼도 경제성장률 0.3%P 올라
건수 중심 개혁 벗어나고 국회계류 법안 조속 처리
규제총량제 등도 고려를
한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 규모는 세계 14위다. 정부는 경제 규모에 걸맞은 역할을 해주고 있을까.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우리 정부의 효율성은 104위. 같은 정보기술(IT) 강국인 인도(52위)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다. 세부항목은 더하다. 정부 규제에 대한 부담은 소재·부품 강국인 독일(55위)보다 41계단이나 무거운 96위. 심지어 잠비아(35위), 우간다(42위) 등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순위가 훨씬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를 앞세운 정부가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갉아먹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차세대 성장산업인 핀테크는 시작부터 뒤처지고 있다. 글로벌 회계법인인 KPMG가 올해 발표한 세계 핀테크 50대 기업에는 한국 기업이 단 한 곳도 없다. 정부가 개인정보 보호 등을 명분으로 IT 기업의 활로를 상당 부분 막아버린 탓이 컸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계 톱 클래스 IT 강국 코리아가 정작 이를 기반으로 꽃 피운 핀테크 시장에서는 후발주자 신세가 된 것이다.
문현상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빠르고 융복합 추세가 강화될수록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가 나타나기 쉽고 이 때문에 기업 경쟁력도 약화되기 쉽다"며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등 기업이 새로운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만 줄여도 경제성장률 0.3%포인트 증가=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등록규제 건수는 1만4,927건. 2009년 1만2,905건에서 2013년 1만5,269건으로 매년 평균 591건씩 규제가 늘자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는 '암 덩어리'라며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지난 1년간 줄어든 규제는 342건에 불과했다.
정부의 규제는 어느 기준으로 봐도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5년마다 발표하는 기업활동 및 경쟁 촉진과 관련된 상품시장규제(PMR)지수를 보면 한국은 전체 34개 회원국들 가운데 2위로 가장 처져 있다. 산업 강국인 독일(26위)은 물론이고 일본(6위)보다도 한참 뒤처졌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규제가 OECD 평균 수준으로만 낮아져도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며 "이것저것 안 되는 것만 다 열거해놓고 되는 것만 하라는 식의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는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경제 살릴 서비스업 규제 법안, 국회에 발목 잡혀=내수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서비스업종 규제도 심각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정부가 차세대 먹거리로 육성하고 있는 금융·소프트웨어·보건의료·교육·관광 등 7대 서비스업종에 대한 규제는 올 3월 기준 총 2,544개로 지난해 2월(2,199개)보다 오히려 345개 늘어났다. 제조업과 비교하면 더 열악하다. 서비스업의 전체 규제 수는 3,601개로 제조업(338개)의 10배 수준에 달한다.
정부가 서비스업과 관련된 이익집단 간 이해관계를 풀지 못하면서 기업이 시장에 진입해야 할 시기를 놓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유해시설 우려 없는 특급호텔의 학교 주변 설립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관련 부처가 업계와 학계의 눈치만 보는 사이 이미 경쟁력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국회도 길을 터주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업 활성화를 위해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관광진흥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은 아직 국회에 계류된 채 법안 통과를 기약할 수 없는 처지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두 배가량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교육과 의료 등 주요 서비스업에서 규제개혁을 반대하는 이익단체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개수에 집착하는 규제개혁도 손봐야=매년 규제 개수의 증감을 발표하는 현 방식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도 높다. 규제를 다루는 공무원들이 성과를 올리느라 없애기 쉬운 규제부터 없애고 이해관계가 상충해 정작 들어내야 할 '덩어리' 규제는 손도 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미래형 자동차로 주목받고 있는 자율주행자동차가 대표적인 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경찰청 등 관련 부처들의 이해관계가 엮이며 관련 규제를 손보지 못해 아직도 국내 업체들은 도로 주행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한 정부부처 규제개혁담당자는 "업계에 필요한 규제 1개를 없애기보다 이미 사문화된 규제 10개를 없애는 것이 성과에 많이 잡힌다"며 "이런 방식으로는 현장에서 규제개혁을 체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처럼 새로운 규제로 드는 비용만큼 다른 규제를 풀어주는 '규제비용총량제'를 대안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웅재 산업연구원 산업경제연구원은 "규제비용총량제는 기업에 부담은 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규제를 만드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규제를 줄여 총량이 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몇 개를 없앴다는 것보다 규제 수요자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