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을 통해 크렘린 복귀를 노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59ㆍ사진)는 90년대 말 숨 막히는 권력 투쟁의 와중에 실권을 장악하고 4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연임한 뒤 지금까지 실세 총리로 군림하고 있는 카리스마 정치인이다. 유도 유단자로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 그에겐 항상 ‘마초’, ‘터프가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현지 정치 전문가들은 장기 집권을 의미하는 푸틴의 대통령 복귀에 대한 일부의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의 12월 총선 승리와 푸틴의 내년 3월 대선 승리를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푸틴이 임기가 6년으로 늘어난 대통령직을 연임해 72세가 되는 2024년까지 장기 집권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무명 인사였던 푸틴은 1999년 8월 9일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에 의해 총리 대행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크렘린으로 이어지는 정치 역정에 들어섰다. 당시 46세였던 그는 소련 시절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국장을 맡고 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인사였다. 옐친은 전격 인사를 단행하며 “내년에 있을 대선에서 푸틴이 후보로 나서길 원한다”고 말해 사실상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언했다. 뒤이어 8월 16일 푸틴은 하원인 국가두마의 인준을 거쳐 정식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 건강이 더욱 나빠진 옐친이 푸틴에게 국정을 맡기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는 하루 아침에 최고 국정 책임자가 됐다. 1999년 12월 31일 옐친이 전격 사임하면서 대통령 직무대행을 떠맡은 푸틴은 이듬해 3월 대선에서 5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된 것이다. 크렘린에 입성한 푸틴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으로 위기에 빠진 러시아를 안정시키며 국민의 신뢰를 얻어갔다. 러시아 연방과 두 차례나 전쟁을 치르며 독립을 시도하던 남부 카프카스 지역의 체첸 자치공화국을 무력으로 굴복시켜 러시아인의 자존심을 살렸다. 옐친 시절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 정치적 영향력까지 휘두르던 신흥재벌(올리가르히)에 대한 대대적 사정을 단행, ‘원숭이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던 재벌들의 오만을 꺾었다. 때마침 찾아온 고유가 상황을 적극 활용, 1998년 디폴트(채무불이행)까지 몰렸던 경제를 성장 기조에 올려놓은 것도 그의 업적이었다. 푸틴 집권 이후 국제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전까지 러시아 경제는 연 7%대의 눈부신 고속성장을 계속했다. 국민 생활은 눈에 띄게 나아졌다. 1년 넘게 밀리던 월급이 제때 나오기 시작하고 급여 수준도 크게 올라갔다. 국내 생산이 회복되고 수입이 확대되면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텅 비다시피 한 상점 앞에 긴 줄을 서던 일은 옛날 얘기가 돼갔다. 그 결과 푸틴에 대한 지지율이 70%대로 치솟고 그를 러시아를 위기에서 구한 ‘구세주’로 칭송하는 여론이 번져 갔다. 크렘린의 자유언론과 야당 인사 탄압, 체첸 주둔 러시아군의 인권 유린, 관료들의 부정부패 등을 지탄하는 야당의 목소리는 푸틴의 공적에 가려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푸틴은 2008년 5월 3선 연임을 금지한 헌법 조항에 밀려 크렘린 궁을 떠났다. 옛 소련 정보기관 KGB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3선 개헌이란 무리수를 두는 대신 대통령에서 총리로 물러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실용적 길을 선택했다. 후임엔 동향(상트페테르부르크)에 레닌그라드 대학(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대 후배로 90년대 초 상트페테르부크 시(市)정부 시절부터 근 20년을 동고동락한 메드베데프를 앉혔다. 이로써 러시아엔 형식상의 최고지도자인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실질적 권력자인 푸틴 총리가 함께 통치하는 ‘이중권력’의 시대가 열렸다. 총리가 된 이후에도 푸틴은 ‘러시아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지도자’란 평가를 한번도 잃지 않았다. 2008년 시작된 국제금융 위기의 여파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최근까지도 그에 대한 지지도는 60%대를 웃돌고 있다. 더딘 경제회복과 근절되지 않는 부정부패, 민주주의 후퇴 등을 비판하는 국내외의 반(反) 푸틴 여론이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그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푸틴이 2012년 대선에 재출마할 것이란 관측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푸틴은 24일 여당 전당대회에서 그동안 숨겨왔던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합의를 전격적으로 공개하며 크렘린 복귀 의사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