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전 재정경제부(옛 재정경제원) 차관이 저술한 회고록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이 화제다. 개발독재에서 외환위기 때까지 경제정책이 수시로 정치권의 입김에 의해 흔들리고 전문성 부족으로 좌충우돌했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강 전 차관은 책에서 외환위기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한국의 국가 부도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밝혔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동성 자금을 긴급히 공급하기에 앞서 한국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이면각서에 지나치게 세부적인 내용들을 담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제일은행 매각에 대해 당시 전액 감자 후 매각이나 청산 등의 조치를 바로 취했다면 15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상황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탈에는 부실이 많으면 정부에 넘기고 부실이 적으면 먹는 ‘꽃놀이패’가 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정부와 한국은행ㆍ한국개발연구원(KDI) 모두 외환위기를 목전에 둔 96년까지도 무지갯빛 청사진을 내놓는 등 ‘헛소리’를 남발했다고 질타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97년 11월28일(금요일) 오후2시 클린턴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의 재무상태가 극도로 심각하기 때문에 빠르면 1주일 후인 다음주 말께 부도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 현실적인 길은 늦어도 3일 이내에 신뢰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경제ㆍ재정 프로그램을 IMF와 합의, 발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차관은 이와 함께 IMF와의 이면각서에는 ▦콜금리를 97년 12월5일까지 25%로 인상 ▦ 국내 은행에 대한 한국의 외환지원에는 리보+4% 페널티 금리적용 ▦교통세와 특별소비세 인상 ▦외국인 주식 소유한도 97년 말까지 50%로 인상 ▦9개 종금사 영업정지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금융기관 합병인수 허용 ▦ 대통령 후보들 IMF 프로그램 지지ㆍ집행 성명발표 등이 명시됐다고 밝혔다. 이면각서는 구체적 내용과 시기에는 차이가 있으나 그대로 집행됐다면서 조치를 취해야 할 날짜와 영업정지할 종금사의 명단까지 이행각서에 못 박은 데는 한국정부에 대한 IMF와 미국의 불신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강 전 차관은 96년에 정부는 경제성장률 7.5%, 물가 4.5%, 경상수지 적자 60억달러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다고 큰소리를 쳤으며 한국은행은 수출이 늘어나 경상수지가 개선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헛소리’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KDI는 96년 5월에 세계 6대 교역국과 7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21세기 경제장기 구상’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이 또한 위기를 앞둔 ‘헛소리의 백미’였다고 지적했다. 한편 강 전 차관은 지난 70년 공직에 처음 발을 내디뎌 부임한 경주세무서 생활을 술회하면서 당시 국정감사를 하러 내려와 불국사관광호텔에 머무는 국회의원들을 위해 채홍사 노릇까지 하다가 기자들에게 들켜 홍역을 치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