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벙커' 우회하라
브리티시오픈 첫날, 톱골퍼들도 악명높은 벙커에 울상
김진영 골프전문 기자 eaglek@sed.co.kr
지난 90년 닉 팔도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코스레코드인 18언더파 270타로 브리티시오픈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꼭 10년 뒤인 2000년 타이거 우즈가 그 기록을 1타 경신하며 역시 브리티시오픈 정상에 올랐다.
두 선수가 각각 당시 올드코스 최고 기록을 낼 수 있었던 공통점은 ‘벙커는 무조건 피한다’는 전략.차이가 있다면 팔도는 딱 한번 벙커에 볼을 빠뜨렸고 우즈는 단 한번도 벙커에서 샷을 하지 않았다. 그 한 타의 벙커 샷이 팔도와 우즈의 기록 차이 1타를 만들어 낸 셈이다.
5년 만에 다시 올드코스(파72ㆍ7279야드)로 돌아와 13일 개막된 제134회 브리티시오픈.
대회 출전자 156명 모두가 ‘벙커를 피하라’는 지상 명령을 가슴에 담고 티오프 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되면 골프가 아니다. 올해 역시 첫날부터 수많은 선수들이 올드코스의 벙커 속에서 눈물을 뿌렸다.
이 코스 곳곳에 자리잡은 벙커는 무려 112개.
덤불 뒤에 숨겨진 작은 벙커들은 갑자기 나타나 선수들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관(Coffin), 지옥(Hell), 사자 입(Lion mouth) 등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유명 벙커들은 존재 자체로 위협이다.
올드코스에 이름이 있는 벙커는 20개쯤.
이중 파5의 14번홀 페어웨이 중간에 있는‘지옥’과 17번홀 그린 앞 왼쪽에 있는 ‘로드(Road)’벙커가 가장 악명 높다.
지옥 벙커는 그린만큼이나 넓고 깊이가 180cm나 되는 ‘큰’벙커로 일단 근처에 떨어진 볼이 굴러 들어가기 쉽다. 벙커 중간에 볼이 떨어지면 쉽게 쳐낼 수 있어 보이지만 워낙 깊기 때문에 턱에 걸리기 십상이고 나온다고 해도 바로 앞 러프에 볼이 떨어질 확률이 높다. 운이 나빠 턱 바로 아래쪽에 볼이 멈추면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이 벙커의 희생자는 잭 니클로스. 그는 지난 95년 이곳을 무려 4번만에 탈출해 더블파(10타)를 기록했다.
로드 벙커는 규모 면에서는 지옥 벙커의 20~30%쯤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악명은 더 높다. 페어웨이 오른쪽에서 그린 뒤까지 아스팔트 도로가 이어져 ‘로드 홀’로 불리는 17번홀은 티잉그라운드 오른쪽의 올드호텔 담장을 질러 티 샷을 잘 날려 놓으면 그린까지 크게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그린 오른쪽으로 바짝 붙어있는 길과 담장, 그 너머의 호텔 주차장 등이 부담스러워 약간만 왼쪽으로 볼을 날릴 경우 여지없이 ‘손바닥만해 보이는’로드 벙커에 들어가게 된다.
퍼팅을 조금만 세게 해도 벙커에 빠진다.
지난 78년 토미 나카지마가 그랬다. 당시 일본인 최초 메이저 우승의 영광을 눈앞에 두고 선두권을 달렸던 나카지마는 이 홀에서 2온을 했지만 첫 퍼팅이 길어 벙커에 빠졌고 벙커에서 무려 4타나 더 치는 바람에 9타로 홀 아웃했다. 이후 이 벙커는 ‘나카지마 벙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편 올해 대회를 위해 실시한 코스 개조 때문에 선수들이 벙커에 빠질 확률은 더욱 높을 것으로 보인다. 2번홀은 티잉그라운드가 40야드 뒤쪽으로 빠졌고 그린의 경사가 훨씬 가팔라져 퍼팅으로 벙커에 빠질 수도 있다. 12번홀은 34야드가 늘어 티샷이 페어웨이에 숨겨진 작은 벙커에 빠질 위험이 높아졌다. 13번홀에서는 관 벙커가 길어져 전에는 250야드만 날려도 넘길 수 있었지만 올해는 적어도 285야드는 쳐야 피할 수 있게 됐다.
입력시간 : 2005/07/14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