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국내은행, 동남아 금융 관문 태국 재진출 하나

환란이 만들어낸 금융 빗장… 태국 '조건부 개방'으로 열어<br>최소 자본금 7000억 이상… 해외법인 형태로 진입 원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시중은행들은 살 길을 찾기 위해 동남아시아의 금융 관문으로 불리는 태국에서 집단으로 탈출했다. '엑소더스'라 불릴 정도였다. 이후 태국 금융시장은 꽁꽁 닫혔다. 힘들다고 빠져나가는 우리 금융회사에 대해 태국 정부가 일종의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그러던 태국 금융시장의 문이 15년 만에 다시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국내 은행의 현지 진출을 원천 봉쇄했던 태국 정부가 최근 들어 조건부 개방 의사를 피력했기 때문이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19일 "태국을 방문해 현지 금융 당국 고위관계자에게 태국 금융시장 개방 여부를 물었더니 조건부 개방 의사를 밝혔다"며 "과거 '절대 불가'만을 외치던 것에 비하면 고무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물론 태국 정부가 밝힌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하지만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 자체가 청신호라고 금융회사들은 보고 있다.

글로벌 소식통들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우리 금융회사들이 현지에 들어오려면 사무소나 조인트벤처(JV)가 아닌 해외법인 형태의 진출을 바라고 있다. 이 관계자는 "태국 정부는 자신들의 금융시장 수준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과거 국내 은행들이 보여줬던 엑소더스 행태에 대한 보상심리로 규모를 갖춘 해외법인 형태의 진입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태국 정부가 최소 자본금으로 7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7,000억원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한 시중은행 글로벌전략 담당 부행장은 "7,000억원이면 국내에서 웬만한 중소 보험사나 증권사를 인수할 수 있는 금액인데 해외법인을 세우는 데 쓰기에는 부담스러운 규모"라면서 "하지만 태국 정부가 향후 협상을 통해 진입장벽을 낮춰주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은행 중 태국 현지에 진출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산업은행만 1인 주재원을 뒀을 뿐 그 흔한 사무소조차 설립되지 않은 상태. 국내 은행들이 베트남ㆍ캄보디아ㆍ미얀마 등 대다수 인도차이나반도 국가에 진출해 있고 태국의 경제개방 정도가 강한 것에 비춰보면 의외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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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사연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태국 정부의 간곡한 잔류 부탁에도 불구하고 국내 은행이 전부 철수하면서 일종의 괘씸죄에 걸렸다. 국내 은행들은 그 이후 줄기차게 현지 진출을 타진했지만 태국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태국 금융시장은 방콕은행ㆍ카시콘은행 등 14개의 현지 은행과 스미토모미쓰이ㆍ미즈호ㆍ씨티ㆍHSBC 등 15개 외국은행 지점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한국과 태국 간의 교역규모나 태국의 경제구조 등을 감안했을 때 국내 은행의 태국 진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2011년 한태 무역규모는 수출은 46억달러(13위), 수입은 92억달러(6위)에 달하는데 이는 전년 대비 각각 31%ㆍ29% 증가한 수치다. 한국 기업들은 전기전자ㆍ철강을 중심으로 삼성ㆍLGㆍ포스코ㆍGSㆍ두산그룹 등이 진출해 있다.

특히 미얀마ㆍ라오스ㆍ캄보디아 등과 국경을 마주한 태국은 '바트 경제권'의 핵심으로 꼽힌다. 이들 3국과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반도에서의 영업거점 확대를 노리고 있는 국내 은행들에 태국은 그만큼 매력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태국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외국환 및 수신업무 등에서의 금융수요를 갖고 있는데 대부분은 외국계 은행이나 현지 은행과 복합거래를 하고 있다"며 "경제기반이 두터운 만큼 국내 은행들의 소프트 랜딩 가능성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박해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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