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96주년 3·1절을 맞았다. 올해는 광복과 분단 70년, 한일협정 50년, 을사5조약 110년, 을미사변 120년이 되는 해다. 이번 3·1절이 시사하는 의미가 참으로 엄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역사를 교훈 삼아 미래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동북아 정세 110년 전과 판박이 우려
최근의 국내외적 상황이 110여년 전과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우리의 역량은 그때와 비할 바가 아니지만 국제정세를 예의주시하면서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지속적인 발전과 자존·균형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한일 관계는 참으로 우려스럽다. 2월22일 일본 시마네현에서는 벌써 열 번째가 되는 소위 '죽도의 날' 행사가 치러졌다. 이날 행사에는 시마네현 지사 등 500여명이 참석했으며 일본 정부의 차관급 고위관료인 내각부 정무관이 3년째 참석해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다. 이제 일본의 일부 인사들은 일본 정부가 독도에 대해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우리의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독도영유권 도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일본 우익작가 햐쿠타 나오키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같은 이름의 군국주의 미화 영화 '영원의 제로'가 지난해 일본에서 흥행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에서 무려 550만부가 팔렸다는 이 소설은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의 활약을 다루고 있는데 만화와 영화에 이어 3부작 드라마로 제작돼 설날 직전인 2월11~15일 방영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 19일 설날 오후에 찾아간 경복궁 내 건청궁의 곤녕합(옥호루)에는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었다. 하지만 1895년 10월(음력8월) 일본 군경과 낭인들이 저지른 참혹한 왕비살해 현장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시설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또 이튿날 찾아간 서울의 국립현충원은 너무나도 적막했다. 애국지사 묘역에 세워진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묘비와 묘비명을 보면서 참으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정녕 우리의 아픈 역사를 우리는 제대로 기억하고 기념하며, 가르치고 있는가.
96년 전 우리 선열들은 맨주먹으로 식민지 통치 당국의 무자비한 무력 탄압에 맞서며 거족적으로 항거해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귀중한 성과를 거뒀다. 3·1운동이 대한민국 성립과 발전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되는 이유다. 1919년 3·1운동 당시, 그 어려웠던 상황에서 뿌려진 '독립선언서'는 일본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나 폭력을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인류 공동의 이상과 세계평화, 정의와 인도, 자유와 평등 등 항구적이며 보편적 가치를 표방한 사실은 국내외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경복궁엔 명성황후 살해흔적도 없어
국내외적으로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 맞이한 3·1절이다. 이 시기에 우리 모두 각고의 자기성찰과 반성을 토대로 선열들이 보여줬던 불굴의 용기와 헌신, 공동체와 공공선을 위한 희생과 단결·통합 정신을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또한 민족의 자주독립과 통일을 넘어 세계 인류의 공존동생(共存同生)과 평화 구현을 위한 이상의 실천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