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이 소송 등에 대비해 마련하는 손해배상 준비재원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계법인의 2014년 사업보고서(2014년 4월~2015년 3월)에 따르면 141개 회계법인이 총 1조2,157억원의 손해배상 준비재원을 쌓아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 대비 3.9% 증가한 금액이다. 이 가운데 82.4%에 해당하는 1조25억원은 삼일PwC·딜로이트안진·삼정KPMG·EY한영 등 회계법인의 몫이다.
회계법인은 기업에 대한 외부감사 등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보장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준비재원을 쌓아야 한다. 손해배상 준비재원은 준비금·공동기금·책임보험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준비금은 회계법인이 내부에 적립한다. 현행법에 따라 연 매출액의 2%를 떼어서 준비금으로 쌓아야 한다. 공동기금은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적립해야 하는 것으로 회계법인은 기본금에 더해 연 감사보수 총액의 4%를 내야 한다. 다만 공동기금의 경우 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29개 회계법인이 책임보험의 가입하고 있으며 딜로이트안진과 삼정KPMG의 보험금 규모가 각각 2,763억원으로 가장 많다.
회계법인의 손해배상 준비재원이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은 매년 적립금이 쌓이기 때문이지만 분식회계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기업 투자자의 보편적인 대응으로 굳어진 데 따른 영향도 있다. 실제 최근 3년간 회계법인을 상대로 36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됐고 이 중 12건에 대해 14억원의 책임을 졌다.
앞으로도 대형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의 일부 소액주주는 회사가 3조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지난 2·4분기 사업보고서에 한꺼번에 반영한 것을 문제 삼으며 감사를 맡은 딜로이트안진을 상대로 이달 중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삼일PwC는 증권선물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감리위원회로부터 2,500억원 규모의 공사 예상 손실을 대손충당금으로 반영하지 않아 10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최종 징계 여부는 오는 23일 열리는 증권선물거래위원회 정례회의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중징계가 의결될 경우 투자자의 반발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동양그룹 계열사를 부실 감사했다는 이유로 올해 7월 증선위에서 제재를 받은 삼정KPMG·EY한영 등도 살얼음판을 걷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동양 계열사는 2013년 일반투자자에게 부실 기업어음(CP)을 발행해 광범위한 투자 손실을 낳은 만큼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 가능성이 남아 있다. 대형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대형기업의 회계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는 탓에 금융당국의 감리는 물론이고 투자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