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12월 18일] '달러 거품' 조연의 무거운 짐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 실물경제를 강타하면서 ‘달러 버블’에 조연역할을 했던 아시아 국가들의 짐도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물론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무모한 ‘달러 거품’을 일으키고도 과도한 소비를 즐겼던 미국에 있다. 18년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맡으면서 지난 2001년부터 13차례나 금리를 내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이 비판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권력을 이용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 엄청난 달러를 발행했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연평균 3%에 지나지 않았으나 화폐증가율은 연평균 16%를 기록했다. 반면 1984년 10.8%였던 미국의 저축률은 지난해 -1.7%로 낮아졌으며 결국 미국의 과잉소비를 떠받쳐준 것은 중국 등 수출국들의 생산력 확대였다. 수출 의존국들 부담 커져 미국에서 넘쳐나는 달러는 미국인들의 과잉소비를 통해 수출국인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대신 세계에서 가장 많은 1조9,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는 중국은 안전하다는 미국 재무부채권에 9월 말 기준으로 5,850억달러나 투자했다. 중국으로 간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동안 미국은 어느 정도 달러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고 물가도 안정됐다. 미국으로서는 자각증세를 느끼지 못한 채 위험을 키운 셈인데 결국 미국경제에 버블을 일으킨 과잉소비에 중국 등의 생산력 확대가 조연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계속된 통화정책이 실패작이었음이 확실해진 지금에 와서도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실세금리가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는데도 신용시장의 거품이 언제 걷힐지 모르는 미국은 이제 무제한의 발권력을 동원해 장기국채까지 사들이는 ‘양적 완화’ 정책을 선택했다. 드디어 FRB가 금리가 아니라 통화량으로 승부를 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당장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미국 정부의 지급능력이 위태롭게 되는 가까운 장래에 또다시 국채발행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의 부채는 공공부문 118조달러, 민간부문 42조달러 등 모두 160조달러에 이르러 앞으로 한해 이자만도 약 14조달러인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설 수 있다. 장래에 다시 과도한 국채발행이 불가피하게 되면 금리는 급등하고 약세로 전환된 달러에 대해 아시아 투자국들은 달러자산 보유를 점차 철회하게 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 등 각국이 구제금융에 적극 나서더라도 추락하는 세계경기 하강을 돌이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수출의존도를 줄이고 내수확대에 적극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는 최근까지 두자릿수의 수출증가율로 성장의 동력을 삼아온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해에 경상수지 흑자 100억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우리 사정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정부 내수진작 너무 미온적 국제금융의 공조가 중요하고 보호무역은 안 된다고 소리치지만 마이너스 성장을 면하지 못하는 선진국을 상대로 얼마나 더 무역흑자를 늘릴 수 있겠는가. 수입급감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상수지 회복은 다급했던 외환시장의 안정을 가져오겠지만 경제회복을 보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수를 살리겠다는 우리 정부의 자세는 너무 미온적이다. GDP 대비 중국이 16%, 미국이 7%의 경기부양책을 쓰는데 비해 우리는 3.7%에 그치고 있다. 물론 재정지출도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경기부양에 실패한 1990년대의 일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은 지나치게 인프라 건설에 치중해 효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기가 터졌을 때 기업이나 가계 등 경제주체들과 시장이 의지할 곳은 정부밖에 없다. ‘달러 거품’의 조연에 지나지 않았던 아시아 국가들의 짐이 너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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