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대변혁의 국제 금융시장] 은행 '기관'아닌 '회사'로 거듭나야

[대변혁의 국제 금융시장] 은행 '기관'아닌 '회사'로 거듭나야 '회사냐 기관이냐' 한국의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투신사들의 정체(Identity)가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답은 명확하다. 이들은 대부분 주식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은행 등은 불특정 다수로 구성되는 주주들이 주인인 주식회사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은행 등은 '회사'보다는 '기관'으로 더 익숙하다. '금융회사'는 낯설지만 '금융기관'은 어색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그렇게 써왔기 때문이다. 기관과 회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공공성에서 갈린다. 공공의 이익이 우선되는 게 기관이다. 물론 회사도 공공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수익'이 최우선의 덕목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금융의 난맥상이 얽혀 있다. 실제로는 회사이면서 기관의 행위를 요구받는 게 한국 금융산업의 현주소다. 금융을 통치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관치금융, 속박 속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금융인 스스로의 나약함이 맞물려 금융시스템의 낙후를 가져왔고 결국 이는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금융시스템은 아직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금융회사냐 금융기관이냐의 정체성 혼란도 여전하다. 국민의 정부는 과거 정권과 달리 시장원리를 강조하며 금융회사들의 자율판단과 시장질서를 중시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결과가 기대에 못미치는 게 사실이다. 최근 들어서는 관치금융이 다시 부활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부실회사채 인수를 둘러싼 정부와 제일은행간 대립이 '회사'와 '기관'을 극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도 정상화하지 못해 결국 외국인 손에 넘어간 제일은행은 부실회사채 인수를 거부하고 나섰다. 은행권 중에서는 유일하다. '기관'으로서의 책무를 요구한 정부에 '회사'의 주판알로 맞선 셈이다. 누가 옳고 어떻게 귀결될 지는 두고 봐야 겠지만 은행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금융회사들이 '기관'과 '회사'사이를 오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정부에 있다. 은행은 물론 증권사나 보험사 같이 주인이 있는 곳에 대해서도 규제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기관화'시켜왔기 때문이다. 법리적 이유도 있다. 법령체계부터 '금융기관'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법령과 시행령, 규칙, 지침 등에 '금융회사'라고는 나오지 않는다. 은행과 증권, 보험, 투신 같은 대형회사는 물론 상호신용금고나 신용협동조합, 카드사, 할부금융사 같은 여신전문회사도 규모나 기능에 관계없이 모조리 '금융기관'이다. '기관'은 '규제와 보호의 온실 속에서 커온 기득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기관이 성격이 강한 금융회사일수록 자생력이 약하고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아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은행 구조조정이 파업과 농성으로 얼룩지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반면 애초부터 시장과 호흡을 함께 했던 증권회사들은 외부여건이 악화되자 인력과 급여를 줄이고 합병을 모색하는 한편 본사사옥도 미련없이 매각하고 있다'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의 지적은 '회사'와 '기관'의 차이를 대신 말해주고 있다. 삼성금융연구소 정기영 소장은 "세계적으로도 금융회사의 공공성이 크게 요구되고 있지만 공공성 이전에 국제자본시장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는 금융회사라는 점을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홍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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