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4월 1일] 쇼를 중단하라

국내에서 최근 1~2년 사이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브랜드 마케팅 사례를 꼽으라면 KTF의 ‘쇼’를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쟁사인 SK텔레콤 대리점으로 찾아가 ‘쇼’에 가입하겠다는 소비자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쇼’ 광고는 거듭된 파격을 통해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압권은 ‘쇼를 하면 영화 티켓이 공짜’라는 광고였다. 멀쩡하게, 아니 깜찍하게 생긴 아가씨가 매표소 앞에서 ‘막춤’을 춘 뒤 공짜 영화 티켓을 요구하다가 “이 쇼가 아닌가?”라며 생뚱맞은 표정을 짓는다. 그 순간 소비자의 머릿속에는 ‘쇼’라는 브랜드가 낙인처럼 찍힌다. 이런 쇼는 즐겁다. 쇼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쇼를 보는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 말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저 쇼를 즐기게 해야 한다. 그게 훌륭한 쇼다. 쇼가 인기를 유지하려면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고객은 감동한다. 같은 소재, 비슷한 플롯(plot)을 고집하면 고객은 외면한다. 쇼를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고통의 연속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 이상이다. 정책이건 제품이건 혼(魂)을 쏟아붓고 성실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결과가 나오고 고객은 감동한다. 그저 시늉만 내면 ‘삼류 쇼’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도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국무회의를 종전보다 1시간30분이나 앞당겨 오전8시부터 열고 청와대는 일요일 아침에도 수석 비서관 회의를 연다. 이에 따라 모든 부처로 ‘얼리 버드(early bird)’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정부종합청사 주차장은 오전9시에도 드문드문 빈자리가 있었지만 이제는 오전7시30분이면 주차공간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이런 ‘얼리 버드’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오전7시에 사무실에 도착한 후 밤 늦게까지 일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일한다면 창의적인 업무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 우리 삶의 질이 높아지고 한국의 경쟁력이 높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무원들이 ‘쇼’를 했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불과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일하는 정부’가 ‘쇼’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조직개편 이후 일부 부처가 이사하는 과정에서 멀쩡한 집기를 버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행인들이 버려진 집기 가운데 일부를 가져가기도 했다. 대통령이 그렇게 ‘예산 절감’을 강조하건만 공무원들은 ‘코 푼 휴지’를 버리듯 혈세를 길거리에 내다버렸다. 기업친화적(business friendly) 정부도 마찬가지다. ‘친화적’인지 ‘적대적’인지 평가하는 주체는 기업이다. 정부가 아무리 ‘친화적’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녀도 기업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반(反)기업 정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에 800㎒ 대역을 다른 업체와 공동 사용(로밍)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주파수는 공공재다. 그래서 어느 나라건 정부가 소유권을 행사하되 일반 기업에 경매 등의 방식으로 점유 및 사용권을 매각한다. 단 이런 사용권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소멸된다. 계약대로라면 SK텔레콤은 800㎒ 대역을 오는 2011년6월까지 아무 간섭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대해 “집주인이 2년 계약으로 세입자에게 전세를 놓자마자 ‘세입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들과 집을 함께 쓰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난도 나온다. 일하는 정부는 ‘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하는’ 정부다. 당장 뭔가를 보여주는 데 집착하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국민은 ‘쇼’가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정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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