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친자 확인


두 건의 친자확인소송이 들린다. 하나는 북한 주민 4명이 제기한 '6.25때 월남한 아버지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소송. 대법원은 북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다른 하나는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이 원고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의 장남인 조희준씨의 친아들을 낳았으니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두 소송은 '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북한 주민 4명은 탈북하거나 통일이 되면 유산 상속이 가능하다. 차씨도 승소하면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


△친자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유전자(DNA) 분석을 통해 빠르면 하루 밖에 안 걸린다. 신화의 영역에서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구려 유리왕은 아버지가 남긴 부러진 칼조각을 갖고 부자 상봉은 물론 왕권까지 물려받았다. 그리스신화에서 영웅 테세우스는 거대한 바위 밑에 숨겨진 징표인 신발과 칼을 찾아내 모험 끝에 아버지를 만났다. 현실에서도 친자 확인이 간단했을까. 그 반대다. 칭기즈칸의 장남으로 유럽을 공포에 젖게 만든 주치는 친아들이 아니라는 의심 속에 견제 받으며 아버지보다 6개월 먼저 전쟁터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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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에게는 진나라 혈통이 아니라 상인 여불위의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아직도 따라다닌다. 진나라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싶었던 한고조 유방의 추종세력의 왜곡이라는 게 정설이다. 고려의 우왕도 공민왕이 아니라 '요승 신돈'의 아들이라는 소문에 시달렸다. 흔들린 고려 왕실의 혈통적 정통성은 이성계의 쿠테타에 의한 왕권 찬탈과 고려 망국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도 관에서 사용하는 친자확인방법이 없지 않았다. 부모의 유골에 자식의 핏방울이 스며들면 혈연관계를 인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류가 과학적 근거를 갖춘 친자 여부를 가린 것은 혈액형 감식법이 선보인 192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 조직형 검사법을 거쳐 1980년대 말부터 DNA 감식법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십개 업체가 성업할 만큼 수요가 늘고 있지만 배우자의 부정을 의심할 만한 결과로 깨지는 가정이 적지 않다고 한다. 손쉬운 진실은 과학적일지언정 축복이 아닐지도 모른다./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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