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7월 2일] 박삼구와 김우중

옛 대우그룹 12개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직후인 지난 1999년 9월 초.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지금은 고인이 된 오호근 당시 기업구조조정위원장을 만났다. 김 전 회장이 오 위원장에게 건넨 말은 많았지만 핵심은 간단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6개사는 나에게 경영권을 맡기기로 했어요.” 수개월여의 줄다리기 끝에 워크아웃이라는 형틀에 들어갔음에도 김 전 회장은 여전히 대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 회장이 “그때(김 전 대통령이 경영권을 보장하겠다고 했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반 설득, 반 압박을 했지만 김 전 회장은 막무가내였다. 자신이 일궈온 기업에 대한 애착이야 당연지사기에 이해를 하면서도 역으로 생각하면 김 전 회장의 이런 미련이 결국 그룹을 공중에 흩날리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하게 된다. 대우의 패망 과정을 이제 와 새삼 떠올리는 것은 논란이 되고 있는 금호아시아나의 구조조정 때문이다. 기자는 최근에 금호가 대우건설을 내놓은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오너가 그룹의 주력사를 팔겠다는 것은 쉽사리 용단을 내리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외환 위기 후 수많은 그룹이 워크아웃을 통해 갱생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주력사를 마지막까지 손에 쥐려 했고 그러다 시간을 놓쳐 공중 분해되는 우를 범하지 않았던가. 다양한 해석이야 있겠지만 박삼구 금호 회장이 대우건설을 포기한 것, 그리고 일본에서 귀국 길에 “대우건설은 좋은 회사”라고 말한 것은 구조조정을 옥죄는 채권단도 평가해줄 부분이다. “박 회장이 사돈이었던 김우중 전 회장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회피 수단으로 대우건설을 내놓은 거겠지”라고 단선적으로 평가한다면 오너인 그에게 너무 모멸 차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불안함이 싹 가신 것은 아니다. 대우건설의 매각 방식을 놓고 벌이는 금호와 채권단의 줄다리기는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39%(대우건설 지분)+경영권’이냐 ‘50%+1주’냐의 논란인데, 과연 이를 놓고 논쟁을 벌일 만큼 한가한 시점인지 모르겠다. 각기 논리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은 내리지 않겠지만 혹여 채권단이 구조조정의 논리만을 앞세우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금호가 아직도 대우건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장의 판단을 무시한 채 스스로의 논리만 내세우다가 수많은 직원들을 실업으로 내몬 옛 대우의 전철을 다시 밟는다면 그것은 기업가와 뱅커의 도리가 아니다. 금호에게는 지금 이렇게 논쟁을 벌일 만큼 시간이 넉넉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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