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그룹은 지난 6월 노르웨이에 투자법인 람버사(RAMBERSA SA)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크루즈선 건조업체 아커야즈를 인수하기 위한 페이퍼컴퍼니. 3개월여간의 작업 끝에 STX는 총 8억달러를 들여 아커야즈 지분 39.2%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지분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STX조선ㆍSTX엔진 등 계열사들이 분담했다. 주당 인수가격은 97NOK(노르웨이 크로네, 한화 약 1만6,380원). STX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커야즈사의 21일 종가가 70.5NOK(한화 약 1만1,840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략 37%의 프리미엄을 얹어 지분을 취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3개월간 숨죽인 채 진행됐던 아커야즈사 인수 프로젝트는 강덕수 회장과 STX그룹에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국내 조선업계 최초로 STX가 크루즈선 생산체계를 갖추게 됐다는 점. 이로써 중국 조선업계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세계 조선업계의 강자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 등이다. ◇STX 경영권 확보할까=결론부터 말하면 속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STX그룹은 이번 지분 취득으로 아커야즈사의 최대 주주가 됐다. 특히 이 회사의 지배구조가 소규모 기관투자가들로 구성돼 있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로 올라섰다. STX 측은 하지만 “이번 지분 취득이 경영권 인수는 아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또 “이사 파견 등 경영 개입에 대해서도 결정된 바 없다”고 도리질치고 있다. 극도로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조선업계 안팎에서는 이에 대해 “크루즈선 산업은 유럽의 ‘자존심’이라는 정서가 있다“며 “이 때문에 STX가 최대지분을 확보해놓고도 경영권 얘기를 쉽사리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현지 정서, 주변 업체들의 동향, 노르웨이 정부의 자세 등등이 모두 신경 쓰인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경영권 확보를 위해 STX가 추가 지분 취득을 시도한다 해도 일련의 작업이 상당한 기간을 두고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크루즈선 생산체계 확보=‘떠다니는 호텔’로 불리는 크루즈선 건조는 국내 조선업계의 궁극적인 목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이 수년 전부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런저런 난제를 극복하지 못해 아직 수주전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M&A를 통해 성장해온 STX그룹은 이번에도 M&A를 통해 단숨에 크루즈선 생산체계를 갖추게 됐다. 아커야즈의 크루즈선 건조 능력은 연간 4척. 현재 수주 잔량은 10척, 75억달러에 달한다. STX 측은 “이번 지분 취득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척당 가격이 최고 10억달러에 달하는 크루즈선은 건조되는 것 중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이다. 컨테이너선 건조시 조선사의 영업이익률이 10%를 밑도는 반면 크루즈선은 최소 15%가 넘는다. 글로벌 전략의 시각에서 보면 STX조선은 중국 다롄 생산기지를 중저가 범용선박 위주로, 국내 진해조선소를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는 ‘생산기지별 선종 전문화’ 전략을 추진하는 와중에 유럽에 크루즈선 생산 기지까지 확보, 말 그대로 완벽한 생산체계를 갖추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