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민족상잔의 비극 6ㆍ25전쟁이 일어난 지 55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50년 6월25일부터 57년 7월27일까지 벌어진 6ㆍ25전쟁은 민족사적 관점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최악의 인재(人災)요, 환란(患亂)이었다. 또한 세계사적 시각에서도 20세기로 접어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제외하고는 가장 참혹한 전쟁이라는 국제적 평가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인명피해가 엄청났다. 6ㆍ25전쟁에서 한국군의 전사자 약 7만명, 부상자 약 15만명, 포로 약 8만명, 합계 약 30만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공산군의 사상자는 약 200만명(중공군 60%)이 나왔다.
북핵문제로 제2의 6·25 위기
한국 국민은 약 50만명이, 북한 주민은 약 3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기록하고 있다. 인명피해도 컸지만 조상대대로 물려온 아름다운 강산이 폐허가 되고 숱한 문물의 파괴를 포함한 정신적ㆍ물질적 피해는 일일이 계량(計量)조차 할 수 없었다.
필자는 6ㆍ25가 일어날 때 철부지 여섯살짜리 어린이였다. 깊은 산골 강원도 평창 고향마을에서 반은 어른들에게 업혀서, 반은 걸어서 경주까지 피난 가던 기억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새롭다. 그런데 어느덧 55년의 세월이 흘러 인생을 정리해야 할 60고개에 이른 것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변함없는 것이 있다. 무엇보다도 국토가 여전히 남북으로 갈라진 채 대립하고 있으며 전쟁 재발의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사실이다. 6ㆍ25전쟁 55주년을 맞은 오늘 이 시점에 이 땅 이 겨레는 또다시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으니 생각할수록 가슴이 무겁다.
세계사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독재를 배척하고 자유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됐다. 인종과 사상, 생활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가간의 전쟁을 피하고 평화와 공존 속에서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인류사의 발전을 위한 지향점이 됐다. 이제 포악한 독재자가 아닌 다음에야 전쟁을 정치적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공언하는 미치광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위험성은 엄존한다.
특히 북핵 문제에서 불거진 미국과 북한간의 갈등이 제2의 6ㆍ25전쟁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현재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전쟁 재발의 위기를 조성한 직접적 계기는 북한의 핵개발에서 비롯됐다. 북한의 핵개발은 체제보장, 즉 김정일 정권의 안전보장이 그 첫번째 이유다.
그런데 이처럼 전쟁 재발의 위험성이 점차 높아가는 가운데서도 최근의 남북관계를 보면 긴장 완화와 평화공존의 희망이 엿보이는 듯해 가냘프나마 한가닥 기대를 걸어보게 된다.
15일부터 18일까지 평양에서 있었던 6ㆍ15행사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비난 철회와 체제보장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7월 중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혀 북핵 문제 해결에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또 한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재개 ▦8ㆍ15 광복절 때 이산가족 상봉 및 화상상봉 ▦공해상 공동어로 등을 위한 수산회담 개최 ▦서울ㆍ평양간 직항로 개설 등에 관한 협상 등을 구두로나마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전쟁 위험성이 해소됐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북측이 보다 성의 있는 조치를 보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김정일이 공언하고 합의한 것 가운데 실행한 것보다도 실천에 옮기지 않은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의 합의 사항들도 북측이 얼마나 성의를 갖고 실천하는가를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갈등 극복, 相生의 길 찾아야
뿐만 아니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극단적인 좌우 갈등이 하루빨리 마무리돼야 할 것이다. 특히 감상적인 민족공조와 통일론은 당연히 경계하고 배척해야 한다. 북진통일이니 반공통일이니 하는 소리도 시대착오적 구호가 돼버린 지 오래지만 할 말은 제대로 못하면서 일방적 퍼주기나 되풀이하고 북측이 곧 개혁과 개방을 하고 평화공존의 틀 안으로 들어오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신기루 같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온 산하를 피로 물들이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참혹한 전쟁이 또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6ㆍ25를 겪으면서 우리가 얻은 통렬한 교훈이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6ㆍ25의 상처를 씻고 민족의 웅비를 위해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의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