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로에 선 외환관리] 얼굴없는 사냥꾼

정보력 앞선 투기세력 "원화는 먹잇감"<br>NDF시장 좌지우지하면 막대한 차익 예사<br>정부 규제도 되레 배만불려 결국엔 뒷걸음


[기로에 선 외환관리] 얼굴없는 사냥꾼 정보력 앞선 투기세력 "원화는 먹잇감"NDF시장 좌지우지하면 막대한 차익 예사정부 규제도 되레 배만불려 결국엔 뒷걸음 • "煥시장 튼튼…사냥터 되는일 없을것" 최대 1조2,000억달러로 추산되는 글로벌 헤지펀드. 10년 넘게 외환거래에만 매달려온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나라 밖에서 들어오는 이들 자본을 ‘얼굴 없는 미녀’에 비유했다. 겉으로는 외국자본이라는 미명을 달았지만 순진한 국내 거래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뒤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지곤 하는 헤지펀드. 지난 2003년 3월29일. 시중은행의 딜러 김모 과장은 외환시장 개장 직전 환율 시세판을 보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환율이 달러당 1,170원 수준에서 강세를 이어가던 상황에서 전날 밤 역외 세력들이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돌연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싱가포르에서도 이어졌다. 김 과장은 배경을 알아볼 겨를도 없이 숏커버(손절매)에 들어갔다. 손실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덩달아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였다. 딜러들이 돌림병에 걸린 것처럼 서로 원화를 팔자 환율은 국내 외환시장에서 1,260원까지 치솟았다. 오후1시께 북핵 사태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뉴스가 터져나왔다. 국내 딜러들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면서 원화를 파는 동안 투기세력들은 다시 원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원화는 보름 만에 1,170원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원화를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 국내 투자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원화를 사들였던 헤지펀드들은 최대 수십억달러의 이익을 챙겨갔다. 어찌 보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국내 투자자들의 업보일 수도 있는 대목이다. 환란 이후 헤지펀드는 국내 외환시장에서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 이상의 위협적인 존재로 자리잡았다. 원화환율의 급등락 요인이 되는 정보를 미리 입수, NDF시장을 통해 이익을 챙겼다. 북핵 문제는 단골 먹잇감이었다. 한 딜러는 “역외에서 2~3곳이 동시 다발적으로 1억~2억달러 가량 들어올 경우 국내 딜러들은 영문도 모르고 손절매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헤지펀드들의 과장된 루머에 휩쓸려 막심한 피해를 입은 경우도 다반사”라고 전했다. 2004년 1월. 투기세력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한 정부는 고심 끝에 역외세력들의 원화 매입규모를 제한했다. 국내 은행들이 역외세력의 NDF 매도분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역외 환투기를 막아보겠다는 복안이었다. 투기세력들은 곧장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았다. 규제의 빈틈을 이용해 이번에는 국채로 몰려들었다. NDF 규제→리보금리로 달러 조달 후 현물시장에서 매도→NDF서 달러 매입→현물시장에서 달러 매도 후 원화 마련→국채(통안채) 집중 매입의 거래가 이어졌다. 우리 정부의 대규모 개입으로 당시 1,200원 바로 밑에서 유지하던 환율이 결국 1,170원대로 떨어질 것을 예상했던 것. 국제시장에서 싼값으로 달러를 조달해 원화로 바꿔놓았던 헤지펀드들은 이익을 볼 수밖에 없었다. NDF가 아니더라도 원화를 마련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자율과 투명성’을 거스르면서까지 마련한 규제조치가 오히려 투기세력의 배만 불려준 셈이다. 결국 재경부는 한달여 만에 NDF 규제 일부를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했다. 지난해 국내 외국환은행과 국내 비거주 외국인과의 NDF 거래규모는 일 평균 17억달러. 2003년보다 26.9%나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류현정 씨티은행 부부장은 “국내 환시 거래규모가 환란 이후 커진 것 이상으로 역외세력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엔디 시에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가 수 차례 언급한 것처럼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원화를 먹잇감으로 삼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차별적 공세에 무장해제된 채 당할 수밖에 없는가. 외환전문가들은 국내 외환시장 규모가 좀더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국계 은행의 한 딜러는 ‘시장친화적’ 개입을 주문했다. 그동안 투기세력에 대한 정부의 개입방식은 빈번하게 이뤄졌지만 소극적 행위에 머물러왔다. 투기세력에 내성만을 길러줬다. 외국계 은행의 한 딜러는 “결정적인 때를 골라 대규모 개입을 단행함으로써 투기를 무력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딜러간 폭 넓은 정보공유가 시급하다는 점도 딜러들이 주문하는 단골 메뉴다. 특별취재팀=김영기기자 young@sed.co.kr 김민열기자 mykim@sed.co.kr 현상경기자 hsk@sed.co.kr 입력시간 : 2005-03-0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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