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소프트 파워의 시대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력ㆍ군사력 외에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나 매력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소프트 파워’ 이론을 제시했다. 문화가 국력의 척도가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가 시장에서 소위 이름값이 있는 제품을 선택하듯 오늘날 세계라는 시장에서는 보다 훌륭한 브랜드와 이미지를 가진 국가가 좋은 진열대를 차지하게 된다.
오늘날 선진국들은 국가의 문화 경쟁력 즉 소프트 파워를 배양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일본 등 이미 자국의 높은 브랜드 가치를 확보하고 있는 문화 선진국이 예산과 인력 규모면에서 우리의 10배에서 40배 가량 많은 재원을 국제교류사업에 투입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례로 뉴질랜드의 경우 지난 1999년 ‘100% 순수’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관광 국가로서 브랜드 구축에 나섰다. 그 결과 외국인 관광객이 33% 증가하고 ‘반지의 제왕’ 등 영화 제작을 유치하면서 막대한 수입을 창출했으며 천혜의 자연 환경을 보유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나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됐다.
반면 한국의 실정은 어떨까. 지난해 한국의 경제규모는 12위인 데 반해 독일 평가 기관인 안홀트-GMI가 발표한 한국의 국가브랜드 순위는 35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25위였다. 이는 러시아ㆍ헝가리ㆍ브라질ㆍ아르헨티나 등의 국가들보다도 떨어지는 것으로 브랜드 가치가 실제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한국무역협회의 2005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53%의 기업인들이 세계 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국가 이미지 때문에 해외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적이 있었다는 뜻이다. 증권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과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들도 해외시장에서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뉴욕 증시에서는 30% 가량 저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보다 부정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인들은 삼성은 알아도 코리아는 모른다. 얼마 전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에 대한 이미지 조사에서 삼성ㆍLGㆍ현대차 등이 미국 및 일본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의 대부분은 한국의 위치조차 모르고 있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을 목표로 하는 한국, 이제 이를 위해 전국가 차원에서 주식회사 한국의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할 시기가 왔다. 정부 차원에서 국제사회에 한국의 참모습을 이해시키고 한국에 대한 지지층을 확보함과 동시에 공공외교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 확산시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 또한 명확한 국가 브랜드를 제시하고 한국을 알리는 홍보기관에 힘을 실어 주는 한편 세계 극빈층에 대한 대외 원조를 강화하는 인도주의적 활동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고취시켜야 한다.
민간 분야에서의 노력도 필요하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아름다운 일본 만들기’에 정부뿐만 아니라 각계 전문가와 기업들이 동참해 특유의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일본 문화의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일본의 강점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들 역시 개개인이 한국을 대표하는 홍보 사절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는 ‘어글리 코리안’의 행태가 국가적으로 미칠 막대한 손실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은 유사이래 지금처럼 국제사회에서 관심의 초점이 돼 본 적이 없다. 전후 50여년만에 일구어 낸 눈부신 경제성장,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의 면모, 일본ㆍ중국ㆍ동남아ㆍ아랍권ㆍ남미 등지에서 일고 있는 한류열풍 등은 매우 고무적이다. 개미처럼 일만해 발전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세계가 우리를 보고 듣고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가진 소프트 파워를 한껏 고취시킬 시기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