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 칼럼/5월 12일] 마클럽 부인과 와타나베 부인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프리츠 마클럽(1902-1983)은 지난 1950~60년대 빈발하던 국제외환 위기 및 국제금융 질서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아서 연구생활을 계속했더라면 아마 그에게도 노벨 경제학상이 돌아갔을지 모른다. 오늘날 비록 그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또다시 빈발하는 국제금융 위기는 그의 연구업적을 새롭게 평가하게 한다. 돌이켜 볼 때 1970년대 이후 국제통화 질서의 주요 문제는 미국 달러화의 과잉과 그에 따른 달러화 신인도 문제이다. 세계의 화폐인 미달러화가 세계시장에서 과잉상태이면 달러가치가 떨어지고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 최근 원유, 농산물,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및 주택 등 각종 자산가치의 등귀도 미달러화의 과잉유동성 때문이다. 그러나 달러화 과잉의 원인에 대해서는 미 통화당국의 과잉통화 발행 때문이라는 주장과 각국 중앙은행들의 과도한 외환 수요 때문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실제로 근래 미달러화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로 대부분 달러화를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 동안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위기재발 방지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크게 늘려왔다. 올해 3월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1조6820억달러에 달했으며 일본은 1조달러, 대만과 한국은 각각 2870억달러와 264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싱가포르ㆍ홍콩ㆍ인도ㆍ러시아ㆍ브라질 등 신흥경제국들도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축적했다.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이 엄청난 외환을 보유하는 목적은 무엇보다 자국의 통화를 외환위기나 환투기로부터 방어하기 위함이다. 충분한 외환보유고는 통화가치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힘이다. 외환보유고가 부족할 경우 외환위기를 당할 우려가 있다. 그밖에도 통화당국은 때로 자국통화 가치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외환보유고를 증가시킨다. 과도한 외환보유고를 유지할 때의 문제점도 적지 않다. 최근 미달러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미달러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각국 중앙은행들은 엄청난 환차손을 기록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은행이 막대한 경영적자를 기록한 것도 주로 환차손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인플레이션이 악화될 경우 달러화의 구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게다가 외환보유고는 유동성은 높으나 수익성은 낮다. 외환보유고를 오히려 국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할 경우 높은 수익성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목적을 위해 대규모 외환을 보유한 국가들은 최근 국부펀드를 이용해 해외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보유고를 과도하게 보유하는 경향을 통화를 저평가하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은 아시아 통화의 평가절상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그러나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외환위기의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보다 확실한 보장은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엄청난 환차손과 낮은 수익성, 인플레이션 압력과 무역 마찰 등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대규모 외환을 보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리츠 마클럽은 일찍이 ‘마클럽 부인의 옷장 이론’으로 중앙은행의 외환보유 성향을 설명했다. 부인들은 옷이 많아서 옷장이 가득 차지만 새 옷만 보면 한없이 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부인들의 새 옷에 대한 무한한 욕구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거액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마클럽 부인의 옷장 이론’은 최근 상당한 도전을 받고 있다. 중앙은행이 외환을 보유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막대할 뿐 아니라 ‘마클럽 부인’ 대신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서 ‘와타나베 부인’이 맹활약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 간 금리차를 이용해 엔캐리 트레이드 등을 통해 높은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 외환시장에서 ‘마클럽 부인’과 ‘와타나베 부인’ 중 누가 주도적 역할을 하느냐는 커다란 관심사다. 각국이 적정 규모의 외환을 보유하는 것이 외환의 효율적인 이용이다. 그러기 위해서 외환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역내 국가들 간 정책협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목적으로 마련한 대책이 이른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다. 아세안과 3개국(한ㆍ중ㆍ일)이 외환보유고의 일부를 스와프협약에 따라 공동기금으로 마련해 위기발생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역내 국가 간 정책협력이 확대강화될 때 외환보유고의 비효율적인 낭비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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