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해외칼럼] 월드컵과 對北정책

올해로 77세를 맞은 한국 노(老) 대통령의 주름진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마주한 것은 무척 흐뭇한 일이었다.그의 얼굴에서는 수 십년 동안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인고의 세월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필자가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일궈낸 한국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자 그의 미소는 아침 햇살 속에 더욱 환하게 번졌다. 노벨 평화상 수상, 놀랄만한 경제 회복 성과, 아직 중무장을 해제하지 않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을 앞둔 김대중 대통령의 사무실 분위기는 그다지 밝지 않다. 그가 자신했던 대북정책은 현재 방향을 잃은 듯 보이고 그의 세 아들 중 두 아들은 부패와 직권 남용혐의로 기소를 당한 상태다. 그러나 모든 한국인들이 축구 대표팀의 역사적인 승리에 도취되었던 지난주의 경우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 할애한 지면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한국은 지금 뜨겁게 달구어져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이들의 타오르는 열정을 사그라들게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이번 월드컵에서 얻어낸 대표팀의 승리뿐 아니라 국민들이 보여준 시민정신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폭동이나 영국 훌리건들과 같은 소동은 한국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 서울의 거리로 몰려나온 수십만의 응원단들은 병을 깨거나 하는 작은 소란도 없이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치운 후에 집으로 향했다. 김 대통령은 이를 '새로운 한국'으로 지칭했다. 그는 월드컵이 그의 나라를 한층 성숙된 단계로 올려놓았으며 전 국민의 단합을 이끌어낸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는 다음 경기에서 한국이 승리를 얻어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여부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다. 그는 이번 세계 축제를 통해 얻어낸 이러한 성과들이 내년 2월로 예정된 그의 퇴임 이후에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대통령은 "문화적인 면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커져 왔습니다.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아시아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오랜기간에 걸쳐 축적된 엄청난 열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축구팀 역시 이러한 문화적인 열정을 통해 얻어진 산물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놀라운 경제 회복과 세계 금융계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힘입어 한국은 지금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한 핏줄인 북한과는 먼 얘기다. 김대중 대통령을 가장 혹독하게 비난하는 세력조차도 평양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남한으로 초청하기 위해 이 나이든 '반전운동가'가 펼친 노력에 대해서는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로 향할 기미는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지적이 맞습니다." 김 대통령도 2000년 6월 김정일 위원장이 약속한 남한 답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나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북한 역시 자신들의 의무 이행을 언제까지고 좌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토대로 한국의 다음 정권은 평화적인 공존에 기초한 대북 정책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서는 당신의 지적이 옳습니다. 북한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고 나는 이에 대해 매우 실망하고 있습니다." 김 대통령은 또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부시 정권이 북한과의 문제에 신실한 열정을 가지고 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실망의 기색을 내비쳤다. "70퍼센트의 국민들이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내의 대화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간의 상호 이해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한가지 문제는 북한이 아직도 부시 정권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 북한의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김 대통령의 간절한 염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한국이 브라질을 꺾고 월드컵 우승컵을 차지할 확률보다도 희박하다. 김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의 국민들은 이 두 가지 꿈을 아직 접지 않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참으로 이룰만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둘 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톰 플레이드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