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7/19(토) 아침:비/오후:갬
최국장, 이국장, 본인
우이동 매표소 (7:20)? 우이암(8:10) ? 갈림길 (8:20) ? 오봉약수 (8:30) ? 오봉 (8:55) ? 여성봉 (9:20-30) ? 송추 유원지 (11:20) 식사(11:40-12:00) ? 송추북능선입구(12:10)- 사패산 (14:20-33) ? 회룡사 석굴암( 15:45)- 회룡역 (16:30)
나는 등산 매니아가 아닌데!
전날 이국장과 함께 비가 오니까 가지 말자며 입을 맞추었는데 최국장은 막무가네였다. 그 정도 비는 다니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놀아 달라는 말을 우리가 먼저 꺼낸 터라 못 간다고 우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다음에는 아예 말 대꾸도 안 할 테니까. 둘이서 점심 먹으며 꾸민 작당이 수포로 돌아가 나는 속알이만 했다. 사실 등산 경험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지난 6월 대청봉에서처럼 중간에 비를 만난 것이라면 몰라도 비가 오는 것을 알면서 산에 갈 정도로 매니아는 아니다.
* * *
집을 나서기 싫은 아침
자명종 소리 (5:20)가 나 일어나 창 밖을 보니 비는 오지 않는다. 비온다는 핑계로 정말 포기 할 생각이었는데… 헐 수 할 수 없이 생수병 하나, 파카등 주섬주섬 배낭에 집어 넣고 우산 하나 들고 집을 나섰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쏟아 부을 듯한 먹구름으로 잔뜩 덮여있다. 지하철을 타니(6:10) 사람도 거의 없다. 한강을 건너는데 자욱이 내려 깔린 안개를 보아도 심난하다. 충무로에서 환승, 버스를 타려고 미아역 밖을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는 것 같다. 비오는데 무슨 청승의 등산차림이냐며 뒤통수에 대고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우이동 6번 종점에 내려(7:10) 다리쪽으로 돌아서니 최국장은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이국장은 우의를 걸치고 서 있는 게 보인다. 나는 뭘 좀 먹어야 한다니까 빵이나 좀 사가지고 오라며 서두른다.
최국장은 북한산하고 도봉산을 뒷 동산 다니듯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등산로나 주위 이야기를 많이 안다. 여기 오기 조금 전 원불교 소유라면서 일찍 잘 잡아놨다는 멘트를 하는데도 나는 이 곳이 초행 길이라 전혀 감이 없다.
우이매표소 옆 길을 따라
비는 한 방울씩 계속 떨어지고 실계곡에도 간밤에 온 빗물이 허옇게 흘러 내린다. 줄기가 불그스름한 그 흔한 국수나무가 길을 자꾸 막는다. 준비 운동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좀 경사가 심해 힘이 든다. 어쩌면 많이 올 것 같지도 않고 우의가 거추장스러울 것 같기도 해 나는 우산을 폈다. 이국장도 우의를 벗어 던진 후라 우산을 폈다.
우산 셋이
한 줄로 올라 갑니다.
.
.
파란 우산, 검정 우산, 또 파란 우산
길 없는 바위틈을
우산 셋이서
숨소리 헐덕대며 올라갑니다.
어릴 때 불렀던 ``우산 셋`` 동요가 나한테 이런 가사로 바뀌어 나오리라고 꿈이나 꿔봤겠는가
철거 전에 무당의 명당자리였다는 바위가 있는 좋은 두 자리를 알려 준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비를 피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조그만 능선에 올라 우산 속에서 빵 한쪽 물 한 모금 마시고 초장에 가파르게 올라와 가빠진 숨을 잠시 정리 했다. (7:50)
비슷한 바위길을 한참 더 올라 조망이 트이는 바위에 멈췄다.(8:10) 바람이 너무 세 바위 옆으로 비껴 앉았다. 우이령 계곡으로 하얀 구름들이 띄엄띄엄 우이동쪽으로 빠르게 몰려 간다. 정면으로 좀 올려다 보이는 곳이 북한산 북단의 영봉(靈/永峰:604m). 이 곳에서 산이 된 사람만 80여명. 그래서 영령(英靈)의 ``靈``자나 영원(永遠)히 잠들어라고 해서 永자를 쓴다는 최국장의 설명이다. 그리고 문인이자 1대 산악인인 이은상님의 비문도 있단다. 산을 많이 다닌 분이라 산의 비문에는 그의 글이 많단다. 최국장은 이 곳 도봉산과 북한산의 조망 지점을 잘 잡아낸다.
우이암 주변의 바위들
다시 일어섰다. 이제는 길 같은 길이 나온다. 한참 헐떡거리며 따라가니 우이암 가는 길인데 험로라며 가지말라고 표지판에 쓰여있다. 비가 내리니 잠깐 에움길을 택한 듯 싶더니 다시 바위에 줄을 잡거나 가까스로 바위틈새로 가는 길을 택한다. 우산에 스틱까지 들고 가기가 여간 거추장스럽지 않다. 마지막 험한 바위를 오르니 지난 4월 신선대에서 우이암에 왔다가 본 간판 ``위험지역``이 보인다. 한번 왔던 곳이라 반갑다. 주위는 짙은 운무 때문에 조망이 전혀 않된다. 바로 옆 철계단에서도 그 웅장한 우이암이 너무 희미해 안보인다고 하는 게 낫다.
우이암 암릉지대를 지나다 남녀 성기가 지척으로 마주 하고 있는 것도 알려 준다. 나 혼자라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서로 infighting을 하려고 숨고르기 하고 있는 중이라면 맞는 표현일까. 각인해 놓기 위해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두개의 바위로 만들어진 문을 좁은 것 넓은 것 두개를 지났다. 우이암 주위도 경관이나 위험도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비가내리니 더욱 불안했다.
오봉은 운무속에
우리는 도봉 주능선을 버리고 서쪽 오봉쪽으로 틀었다. 오봉까지는 나도 2001년 늦가을에 간 기억이 있다. 최국장은 지금 가는 길이 진달래가 많고 단풍도 좋고 호젓해 걷기 좋은 길이라고 덧붙인다. 항상 물이 흐른다는 깊은 오봉 계곡에 내려오니 수량이 제법 많다. 곳곳에 폭포를 만들어 놓았다. 조금만 물이 불면 계곡이 끊어질 것 같다. 오봉 약수터에 오르니 (8:30) 한 등산객이 패트병 세개에 물을 채운다. 속으로 ``이 분도 미쳤군.`` 이런 비 속에 이 곳까지 오나 싶었다. 최국장이 이 약수터 물이 좋다며 한 모금 씩 마시자고 하니까 이분은 퉁명스럽게 지금은 빗물이란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능선을 치고 올라서니 북서풍이 나를 금방이라도 날릴 듯이 불어댄다. 태풍 예보는 없었는데 비는 바람하고 같이 다닌다고 했던가. 왼발 등산화 속은 이미 물이 찌걱찌걱한다. 그 비바람을 맞아가며 남쪽 능선을 따라 오른 오봉 (8:50). 운무가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겠단다. 서 있기도 힘들다. 지난번에 와서 봤던 모습만 머리속으로 띄워 올릴 수 밖에 없다. 별 수 없이 쉴새도 없이 여성봉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기서부터는 초행 길이다. 길은 바위도 없고 평지 비슷해 좀 낫지만 길 곳곳에 물이 고여 있어 오른발도 이제는 질척거린다. 비바람은 계속된다.
여성봉의 사실감
9;20-30 여성봉이라는 허연 바위가 앞에 나타난다. 사람들이 하도 비벼댄 바위라 유난히도 허옇다. 여성봉이라고 해서 어느 미인의 옆 모습이라도 되는 줄 알았었다. 이것은 여자의 제일 은밀한 곳을 그것도 쩍 벌리고 있는 모습을 적나나하게 조각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사실적일 수가 있을까. 어느 유명 조각가가 이렇게 해 놓았다면 난리가 날법한 작품이다. 저질이라는 둥, 변태라는 둥, 이런 게 무슨 작품이냐는 둥 온갖 수사를 동원하며 여성들이 난리를 부렸을 것이고, 결국 등살에 못 이겨 치웠을 법한 작품이다. 만일 치우지 않으면 그 조각가 집에는 항상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1인 시위자정도는 말이다. 그런데 수천 수 만년을 통해서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 어느 여성 한 사람 반기를 드는 자가 없는 듯하다. 그 보다는 그 사실적 조각에 ``어찌 이렇게``하며 감탄사만 연시 내 놓을 것 같다. 거기에 소나무는 없으면 안되나? 바위에 틈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 이 작품에서는 이 소나무 한 그루가 여성의 은밀한 곳을 더욱 실감나게 해 준다. 백 만불 짜리. ``기가 부족한 남성들이여 여기 와서 음기를 몽땅 받아가시오``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여성 한봉이 남성 다섯봉 [오봉]을 가까운 파트너로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봉의 숨은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사실 기를 받으러 조금 더 있고 싶은데 비바람이 허용치 않겠단다. 날 좋을 때 다시 와 기를 받아가란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최국장은 아예 미끄럼을 타고 내려온다. 허기도 지고 너무 정신없이 올라와 여기서는 바람만이라도 피해 바위아래 잠깐 앉았다. 이 국장이 급냉동된거라며 지금도 녹지 않은 감을 꺼낸다. 이빨이 빠져나갈 것 같이 시리다. 두개를 뱃속에 넣으니 좀 살 것 같다. 허기는 지는데 쉴만한 곳이 없어 마냥 달려만 오지 않았나.
우중 산행의 맛
이제부터는 송추로 내려가는 길이다. 좁은 길을 따라가다가 중년 남자 셋 여자 둘의 한 일행을 만났다. 송추에서 올라오는 길이란다. 남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 같단다. 나는 ``스스로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다들 웃는다. 그러더니 한 분이 ``우리는 미쳤고 댁들은 돈 사람들``이라고 하잔다. 대처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몇 안 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을 다시 쳐다봤었다.
그런데 비맞고 다니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다. 우선 비가 안 오면 뙤약볕일 텐데 얼마나 시원한가. 사람 없어 한적하고… 나무나 풀들도 비에 낯이 간지러워 좋고 바람에 춤을 추어 기분 좋단다. 너무 해맑은 모습들이다. 장마철이니 이런 비를 구경하지 뙤약볕에는 자기네들도 여간 힘들지 않단다. 그리고 갑자기 비를 만났을 때 대처 요령도 배울 수 있는 기회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온 터라 특별한 것은 없지만… 비가 오니 바람이 더 새진다는 것을 알았고, 가능한 한 우산보다 우의가 나아 보인다. 더욱이 바위를 많이 타다 보니 더욱 우의가 제격이다.
뒤돌아본 여성봉
이제 비는 그쳤고 내려오다 보니 바람도 잔다. 뒤를 돌아보니 구름 지나는 사이로 여성봉이 보인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바위가 나무들에 감싸여 불 타오르듯 기가 넘쳐 보인다. 저 정도 기면 서울에 사는 남자정도는 다 감당해 낼 듯하다. 물안개가 골짜기 여기저기서 피어오른다. 옛말에 용오른다 할 때 좀 더 진한 이런 물안개를 타고 오르지 않았을까?
최국장 특유의 길 아닌 길로 안내해 한참을 내려오니 논이 나온다. 이 국장 말마따나 ``그린필드.`` 하얀 왜가리가 짝을 이루며 이 소나무에서 저 나무로 한가하게 날아다닌다. 까마귀, 까치 소리도 머리 위에서 요란하다. 길가에는 불그스레한 꼬리를 한 꼬리조팝나무가 여기저기에 꽃을 피우고 있다. 너무 한가로운 산자락이다. 송추매표소에 이르니 화단에 이쁜 빨간꽃이 눈에 띄어 물으니 매표소 아주머니는 ``홍화``란다. ``골다공증``에 홍화씨가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11시 반도 채 안되었다. 중국집에 가서 맛있는 자장면을 하 그릇씩 먹잔다. 그냥 산행을 마치기에는 좀 일러 미련이 남는다 싶은데 사패산에 오르겠냐는 최국장의 제의다. 둘다 두말없이 OK. 산에 한번 오면 하루 내내 놀다가고 싶은게 나의 평소 생각. 매일 서울의 도심에 살면서 그곳을 빠져 나왔는데 다시 빨리 기어들어가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게 산행에 대한 나의 지론이다. 계곡물이 다 모여 힘차게 흘러내리는 곡릉천을 따라 ``송추계곡 입구``라는 안내탑이 서 있는 길 건너 자장면집 ``진흥관``에 들어갔다. (11:40-12:00) 최국장도 아는 분한테서 듣고 처음 와 본 거란다. 정말 맛있다. 오전 산행은 우중에다, 운무에다, 바람을 맞으며 우이동에서 송추로 4시간 만에 마감.
사패산을 향해서
이제 우산은 접어 넣었다. 곡릉천을 따라 되돌아가다 산자락으로 들어섰다. 우리의 사패산을 향한 들머리는 지도에 안 나온다. 지난 4월 최국장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이 사패산을 오르려다 포기했었다. 생각치 않은 오늘은 보너스다. 아니 이 사패산이 진짜 오늘의 등산이 될 것 같다. 바위탁자가 옆으로 비스듬이 놓여있는 모습의 봉우리. 이 봉우리를 익힌것도 지난 봄 수락산을 오르면서였다.
이정표가 전혀 없는 곳이다. 지도로 보면 송추북능선이다. 10여분 오르니 쉴만한 바위가 하나 나온다. (12:25) 여성봉의 또 다른 모습이다. 331m 밖에 안되는데 꽤 높아보이면서 툭 튀어난다. 마치 갈기를 한 숫사자가 땅에 적당히 엎드려 먼 곳에 먹이를 발견한 모습이다. 정조준만 되면 달려들 것 같다. 이 모습에서도 여성봉의 기가 보인다.
10여분 지나 공터가에는 노란 원추리들이 반가이 맞는다. 색이 틉틉한 화단의 왕원추리보다 훨씬 보기 좋다. 5분 더 가니 송전탑이 있고 주위에 황토흙 밖에 없었는데 어느새 풀들이 많다고 최국장은 알려준다. 그냥 놔둬도 씨가 날라와 이렇게 모습을 바꿔 논다는 말을 할려고 하는 얘기다.
이번에는 밧줄이 바위위로 올려져 있어 바로 오르지 못하고 옆으로 돌고 돌아 큰 너럭바위로 안내한다. 최국장이 심심하면 올라와 쉬는 사패산 주위의 조망이 제일 좋고 시원한 네 개의 너럭바위 중의 하나란다. 북쪽에 사패산 정상이 또렷이 눈에 들어오고 남쪽은 자운봉과 여성봉이 계속 눈에 들어 온다. 송추계곡에는 물내려오는 게 허옇게 또렷하다. 바람은 여전히 세다. 우리는 물에 푹 젖은 등산화를 벗고 최국장이 도시락에 깎아 넣어온 참외로 입을 즐겁게 했다. 두분은 등을 부드러운 바위에 붙여본다.
비오는 날은 버섯들의 향연(?)
다시 일어섰다. 우중에 산길을 걸으니 유난히 눈에 띄는게 하나 있다. 버섯들의 모습. 마치 이들이 잔치를 벌리기라도 하는 것 같다. 비가 오면 스프링처럼 튀어오르는 모양이다. 길가에 온갖 버섯들이 다 보인다. 냄비 뚜껑만한 것부터 콩알 만한 것까지. 모습도 우산, 평평한 원반, 뒤집어 놓은 불판. 색깔도 흰색에서부터, 노랑, 빨강, 파랑 다 있다. 나오는 모습도 낙엽이 짓이겨져 못 뚫을 성 싶은데 영화에서 비행선이 튀어오르듯 어렵지 않게 뚫고 오똑 서 있다. 비가 오면 버섯들한테도 생명력을 발휘하는 절호의 찬스인 모양이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 사실 요즈음은 생명이 없어보이는 돌들도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를 하나 지나 이번에는 뒤에서 집채보다 큰 바위가 비를 일부 막아 주고 앞에는 편평한 너럭바위인 장소로 안내 한다. (13:53-14:05) 아래는 낭떠러지다. 방향 감각이 없어져 어딘지 모르지만 앞에 바로 능선이다. 바위에 물 흐르는 골이 여럿 패인 걸 보면 적지 아니 세월이 된 것 같다. 잠깐 엉덩이를 또 붙였다. 이 국장은 ``나뭇잎 하나에 우주가 있다``며 굉장히 심오한 철학으로 들어 간다. 대처나 이 국장 말을 들고나니 맞는 말이다.
다시 나와 정상을 향했다. 이제는 의정부 방향에서 오르는 사람들이 한 둘씩 보인다. 포대능선, 원각사, 안골 등 이정표도 보인다. 여기부터는 제대로 된 등산로인 모양이다. 사패산 오른쪽으로 삿갓처럼 큰 바위하나가 덩그러이 올려져 있는게 들어온다.
사패산 정상의 암반은 내 생각을 뛰어 넘어
드디어 사패산 정상 (552m). (14:20-33) 넓고 넓은 2단 암반이다. 자운봉, 만장봉, 신선봉 등이 수직으로 자신을 표현했다면 사패산은 수평으로 자기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예수님이 산상(山上)에서 가르침을 설교 했다는 얘기는 이정도 높은 산의 이렇게 넓은 암반정도는 됐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하로 만들어진 이 정상 암반은 수 백명은 족히 수용할 것 같다. 아랫바위는 골들이 깊게 파여있다. 옛날 어른들이 바위가 크다는 말을 집채만 하다고 했는데 이 암반은 마을 하나를 이루겠다고 표현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종주하는 산악인 남자 둘에 여자 하나의 일행이 대피소에서 배낭을 가득 꾸리고 떠난다. 안내판에 주위 도봉산을 표시했지만 운무 때문에 볼 수 없다. 방향감각을 잃어 남쪽 산자락을 해 놓았는데 자꾸 북쪽을 표시 해 놓은 것 같다. 바람은 역시 세다. 나도 배낭을 벗어던지고 누워 보았다. 솜담요처럼 부드럽다. 호연지기는 이런 곳에서 키우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사패산이 멀리서 봤던 나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흔히 바위 가장자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바위채송화가 여기에도 옹기종기 피어있다. 돌나물과의 이 야생화의 줄기는 채송화와 같고 꽃은 조그만 노란 별같다. 비가 오고 난 후인데다 넓은 암반 옆에 핀 바위 채송화가 오늘 따라 유난히 돋보이고 이쁘다.
하루에 너무 많이 보고 알려면 산신령이 노하신단다. 내려오다 미끄러지면서 손과 팔이 조금 바위에 스쳤다. 너무 욕심을 부리다 그랬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올라 온다. 다시 우리는 최국장을 졸졸 따라갔다. 이제는 내리막길이 주가 되겠지. 잘 나있는 등산로를 지나다 ``고무신 바위``라며 알려준다. (14:49)
고층 아파트 숲이 회룡계곡 넘어 한눈에
다시 한번 더너럭바위에 자리를 잡는다.( 15;10-20) 이 곳도 최국장이 즐겨 찾는 곳 중의 하나. 벌써 7-8명의 한 일행이 전세내 앉아있다. 회룡능선과 범골 능선 사이. 멀리 들판에는 최근 올라간 고층 아파트가 빼곡하고 회룡골에는 회룡사가 가까이 조망된다. 김구선생의 자취가 서린 회룡사 석굴암으로 들어오는 두 바위로 이루어진 불이문(不二門) 모습이 재미있다. 한 등산객이 두마리의 멧돼지가 키스 하는 모습이란다. 정말 그렇다. 그런데 나는 한 술 더 떠 보자. 왼쪽 숫컷은 뽀족한 입이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오른쪽 암컷은 좀 멈칫하는 머리 모습이다. 절묘하게 세워져 있다. 이 능선 따라 왼쪽으로도 바위의 모습이 꽤 괜찮은 봉우리가 둘이나 있다. 마지막 떨이로 참외하고 초코 찰떡파이를 내 놓았다.
김구선생의 흔적이 회룡사 석굴암에
이제는 회룡역을 향해 회룡골을 내려 간단다. 역시 길 없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회룡사 석굴암 길 없는 후문이다. 오른쪽 극락전 왼쪽 산신각 사이로 내려가면서 자색의 수국, 좁쌀같은 흰 꿩의 다리, 하얀 인동초가 화단에 보인다. 뜰로 들어오니 육중한 바위에 백범(白凡) 김구(金九) 무자 중추 유차(戊子 仲秋 遊此: 무자년 8월 이곳에서 놀다)의 한자 10자가 음각돼 있다. 선생의 친필을 받아 1949년 새겨 놓은 거란다. 그 안이 선생께서 잠깐 거처 했다는 곳으로 계단을 올라야 되는 두짝의 문도 돌로 되어있는데 지금은 석굴암이라는 암자로 돼 있다.
그 길로 씨멘트 포장된 길을 따라 내려 오는데 계곡물 흘러내리는 소리와 카운터 테너 매미들의 합창이 웅장한 여름 교향악을 연상케 한다.
매표소를 지나다 하얗게 꽃을 피운 고목 하나가 눈에 띈다. 410년 됐다는 25m의 회화나무. 해미읍성의 그 회화나무와는 달리 마을의 수호목으로 사랑을 많이 받은 모습이다. 꽃도 화사하다. 회룡역 주점에 와 (16;20) 김치전에 동동주 한잔 하고 집에 오니 19시. 의외의 산행이었다...
끝
<채희묵 chaehmoo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