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 3만여명 구직자로 북적… 기업 "엄마들 열정에 놀랐어요"

삼성·GS·신세계·SK 등 10대그룹 82개 기업 참가<br>70~80%가 경력단절 여성<br>"나만의 일·보람 위해 도전… 좋은 기회 더 많아졌으면"

"일을 구하는 것이 더 늦어지면 영영 집에 눌러앉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어요."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COEX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서 만난 김혜령(33)씨는 일자리를 찾아나선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김씨의 곁에는 네 살 된 아들이 꼭 붙어 사탕을 빨고 있었다.


김씨는 첫아이를 낳으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보람 있었지만 너무 가정에만 매이다 보니 무력감이 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됐는데 이러다가는 가정주부로만 살게 되는 게 아닌가 두려워졌다. 영업직으로 일하는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빠듯한 살림살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일을 구하면 엄마 곁을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는 아이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김씨는 "그래서 시간제 일자리를 구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에 공인중개사를 하면서 주말도 없이 일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 그렇게 일을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시간제 일자리가 적격"이라면서 "임신했기 때문에 당장 일을 구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놓아야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미소를 지었다.

삼성ㆍ신세계ㆍ롯데 등 10대 주요 그룹이 참여한 시간선택제 채용박람회 부스는 3만여명의 구직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만큼 경력단절 여성들의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욕구가 커진 것이다. 박람회가 시작한 오전10시 이전부터 입구 검색대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섰다.

행사장에 들어선 참가자들은 입구 앞에 마련된 채용공고 게시판 앞에서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 정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수첩에 옮겨 적었다. 미리 채용정보를 알아본 구직자들은 곧장 기업 채용관을 찾아갔다. 입사지원서 작성 요령을 상담해주는 부스와 지원서에 쓸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부스는 금세 자리가 차 10m 정도의 줄이 생겼다.


행사를 찾은 참가자들의 70~80%는 여성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일을 그만둔 이른바 '경력단절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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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을 다 취직시키고 27년 만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김모(57)씨는 "아이들은 이제 와서 무슨 취업이냐고 핀잔하지만 엄마도 자신만의 일과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경력이 있는 여성 인력을 집에만 놀리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낭비인 만큼 엄마들의 도전을 응원해주는 분위기가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2년 동안 꽃집을 운영하다가 '상담원'이라는 제2의 삶에 도전하게 됐다는 신현자(45)씨는 "CJ와 신세계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도전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그는 "나처럼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전일제로 일하기보다는 시간제로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며 "대기업에서 이런 박람회를 자주 열어 '양질의 시간제'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도 엄마들의 열정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재호 LG생활건강 파트장은 "경력단절 여성 10명 정도를 면접 봤는데 경력도 뛰어나고 열정이 뜨거워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오랫동안 일을 쉬신 분들이 다시 직장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구직자들의 열정을 봐서라도 채용을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당초 참가인원을 2만명 정도로 예상했는데 정확한 집계는 안 되지만 그보다 1만명은 더 온 것 같다"며 "특히 좋은 경력을 갖고도 일자리를 찾는 데 애를 먹었던 경력단절 여성분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여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박람회에 참가한 삼성ㆍCJㆍGSㆍ신세계ㆍSK 등 10개 그룹 산하 82개 기업은 심리상담사, 통·번역사, 변호사, 약사 등 150여개 직종에서 채용설명ㆍ원서접수 등을 진행했다. 이들 기업은 삼성 6,000명, 롯데 2,000명 등 1만여명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만들 계획이다.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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