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부품소재와 대일 무역적자

지난 70년대 산업화 초기과정에서 7대 취약산업을 극복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취약산업에는 염색ㆍ페인트와 함께 금형ㆍ제관ㆍ손톱깎기ㆍ병마개 등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기계를 제작하는 금형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했으며 손톱깎기는 몇 번 쓰면 작동이 제대로 안될 정도로 부품소재 산업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부품소재 산업은 중간재 산업으로 타산업의 생산과 부가가치ㆍ고용 등을 유발한다. 따라서 연관효과가 클 뿐 아니라 대부분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므로 산업의 근간을 이룬다. 이와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부품소재산업은 많은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규모의 영세성을 꼽을 수 있다. 부품소재 산업은 직원 50명 이하의 영세기업이 88.1%를 차지하고 있어 ‘자체 연구개발(R&D) 역량 부족→저부가가치’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둘째로 기술경쟁력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나 아직도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원천기술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셋째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기술과 산업의 융합, 전통산업과 ITㆍBTㆍNT 등 신기술의 융합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의 수준은 아직도 초보단계라고 할 수 있다. 부품소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져왔다. 첫번째 노력은 70년대 중반 전자ㆍ기계ㆍ조선 등 개별산업육성법에 따라 정부가 해마다 국산화 대상 품목을 공고했고 기술개발과 함께 수입을 억제한 것이다. 특히 모터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완제품을 수입할 때 모터를 제외하도록 하는 ‘without motor’ 사건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두번째 노력은 86년 자본재 산업의 국산화 추진이다. 정부는 수입선 다변화 제도를 통해 특정 국가에서 기계류 및 부품소재를 수입하는 것을 억제하고 국산화를 지원했다. 하지만 당시 기술개발을 위한 지원규모는 연간 50억원 수준에 불과했으며 공급자 중심으로 정책이 시행됐고 이마저도 시제품 제작지원에 국한되는 등 정책수단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대일 적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세번째 노력은 주로 참여정부에 들어와 이뤄졌다. 과거 정책이 공급자 중심이었고 중소기업에 나눠주기식이었다면 참여정부의 부품소재 정책은 선택과 집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새로운 시책은 위로는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 속에 추진되고 있으며 범정부 차원의 추진을 위해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부품소재발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업계ㆍ학계 및 연구소의 의견을 수렴해 ‘부품소재산업발전전략’과 ‘융합기술종합발전계획’을 수립했으며 품목별 기술수준과 시장여건을 반영한 ‘부품소재개발 로드맵’도 작성했다. 정부는 아울러 부품소재 기술개발사업, 신뢰성 평가기반 확충 및 산업통계 구축 등 기반구축사업, 사업화 및 종합지원사업 등 3대 핵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2010년까지 수출 1억달러, 매출액 2,000억원을 초과하는 규모의 중핵기업을 300개 이상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수립하기도 했다. 업계 또한 정부의 이 같은 의지에 발맞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 분위기에 동참, 수요기업-부품소재기업간 공동 기술개발사업을 실시하고 공동 해외 마케팅, 성과이익 배분제도, 구매조건부 기술개발 등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이 한데 어우러져 노력함에 따라 부품소재 산업도 이제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나 무역흑자를 거두는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부품소재 산업의 수출은 1,238억달러 규모로 전체 수출의 43.5%를 차지하고 있고 227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해 전체 무역흑자(232억달러)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본 기술에 의존하던 금형산업도 10억달러를 웃도는 무역흑자를 기록했고 만년 적자에 허덕이던 기계류마저 흑자로 돌아섰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최근 들어 원ㆍ달러 환율 하락, 특히 원ㆍ엔 환율 하락으로 부품소재 산업의 대일 수출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일부 업체는 국내에서 개발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수입을 전환하는 경우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욱이 유가 상승에 따른 유류제품 수출 증가와 평판디스플레이 수출 등 특수요인을 제외하면 올 들어 대일 수출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품소재는 산업의 기초이자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다. 특히 21세기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부품의 글로벌 소싱이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대두되면서 경쟁의 패러다임이 완제품에서 부품소재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중국이 섬유와 가전제품은 물론 조선과 반도체 분야에서도 우리를 맹추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부품소재산업의 육성만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이다. 이를 위한 기술개발 투자의 확대와 범정부적인 관심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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