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3박4일간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9일 귀국했다. 노대통령은 이번 방일을 통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국내 안보는 물론 경제에도 가장 큰 짐으로 작용하고 있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는 묵직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아주 넉넉하게 점수를 주더라도 `비교적 잘했다`는 수준이상의 평가이상은 받기 힘들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한국인의 일본 입국비자 면제,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확보, 김포-하네다간 셔틀 운행등 실질적 현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한 데다 국민정서와 맞닿아 있는 과거사, 유사법제 처리에 대해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핵문제, 총론 합의. 각론은 미묘한 차이 = 노 대통령은 귀국에 앞서 가진 수행기자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 “북핵문제가 제일 큰 과제였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북핵은 이번 방일목적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두 정상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지난 4월 베이징 3자회담의 후속회담을 조기에 열고 대화 모멘텀 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함으로써 한일공조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북한이 사태를 악화시킬 경우 양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에는 시각차가 있었다.
노 대통령은 `대화`를 강조한 데 반해 고이즈미 총리는 `압력`쪽에 무게중심을 뒀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일 FTA, 갈 길 멀다=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 교섭 시점문제에 대한 논의는 원점을 맴돌았다. 조기에 교섭을 시작하자는 원칙합의가 전부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9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FTA논의는 빨리 해야 하지만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도 있고 일본이 풀어야 할 문제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국민역량 강화이고 일본이 풀어야 할 문제는 비자면제, 기술이전, 투자, 기술제휴 등이라고 말했다. 즉 FTA가 한 쪽 측면에서는 위기일 수 있지만 가물치 한 마리가 강한 미꾸라지를 만든다는 비유를 들어 우리가 자신감을 갖고 결단하면 충분히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일본이 풀어야 할 문제를 늦출 경우, FTA 교섭이 진행되더라도 빨리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못박았다.
◇과거사 문제, 오락가락 = 과거사문제에 관한 한 노대통령은 오락가락외교의 단면을 보여 빈축을 샀다. 이번 일본 방문에서 과거사와 일본의 전쟁대비법인 유사법제 처리에 미온적인 대응을 보인 데 대해서는 두고두고 말이 많을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과거사문제는 거론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왔다`는 말로 비판을 샀다. 이로 인해 국내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일본 국민과의 TV대화(8일)에서는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는다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며 묻자(덮어두자)는 것은 아니다”며 여론 달래기를 시도했다.
◇동북아 시대 제안, 일 반응 시큰둥= 노 대통령은 이번 일본방문에서 여러 차례 “양국이 `21세기 동북아 시대`를 열어 나갈 것을 제안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본의 메아리는 희미했다. 동북아 시대를 한국이 주도하고자 하는데 대한 부정적인 입장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 역시 “이런 개념은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린다”며 “임기중 가장 하고 싶은 일이고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세부성과 미흡= 한국인의 일본 입국비자 면제,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확보, 김포-하네다간 셔틀 운행 등 경제협력과 교류 활성화를 위한 전제들도 원칙적인 합의만 이뤘을 뿐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도쿄=박동석기자 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