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로에선 외환관리] <6> 춤추는 국제자본

달러 매력 사라지자 곳곳 '불나방 투기'<br>1兆달러규모 글로벌 헤지펀드 고수익 쫓기 판쳐<br>석유 이어 통화시장 불안에 금·국채 새 표적 삼아<br>亞서 자금 대거 회수하면 국내 換市목죌 가능성

2004년 9월27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 정규 거래시장.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11월 선물가격이 배럴당 76센트 오른 49.64달러를 기록하자 원유 트레이더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유가는 오래전 수급상 적정선으로 여겨졌던 35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상황. ‘넘을 수 없는 마(魔)의 가격’으로 일컬어졌던 50달러를 불과 0.36센트 앞두고 있었다. 곳곳에서 초조함을 담은 비명과 탄성이 흘러나왔다. 몇 시간 뒤 열린 시간외거래. 유가는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은 채 50달러를 넘어섰고 다음날 시장은 공황상태로 치달았다. 저무는 달러 시대. 그 흔적은 투기자본들의 이동 경로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됐다. 지난해 말 현재 8,800여개에 이르는 글로벌 헤지펀드. 그들은 9,700억달러(약 1,000조원)에 이르는 자산을 손에 쥐고 먹잇감이 될 만한 시장에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최근에는 위앤화 평가절상이 임박해지자 홍콩ㆍ대만ㆍ중화권 증시에 몰려들었고 중국 부동산시장에만 최대 1,000억달러의 투기자금이 숨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들에게 더 이상 달러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고수익을 찾아 이머징마켓의 통화와 위앤화를 공격했던 자금은 어느 순간에는 석유를, 그리고 불과 수일 후에는 금과 국채로 불나방처럼 시장을 흔들고 다녔다. 가뜩이나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리던 원유시장은 달러약세로 고통을 겪고 있던 헤지펀드들의 투기무대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의 손이 닿는 순간 시장에 더 이상 수급의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해 9월 1조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헤지펀드들이 석유시장에서 마구잡이 투기로 가격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을까. 투기세력들의 유가 공략은 올들어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 기관인 PFC에너지의 세스 클라인만은 “최근의 국제유가 상승은 여러 투자그룹이 원유 선물시장에 돈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유국에조차 그들의 움직임은 달갑지 않다.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헤지펀드가 석유시장을 과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위앤화 절상이 임박해지고 통화시장이 불안해지자 그들의 타깃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표적은 다름아닌 금과 국채. 영국 시장조사업체 골드필드미네랄서비스(GFMS)는 전세계 경기둔화로 안전투자처로 자금이 몰려 올해 국제 금값이 온스당 5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에는 유럽 국채시장으로 자금이 몰려들며 독일과 이탈리아 등의 국채수익률이 사상 최저치로 치달았다. 헤지펀드들은 속성상 6개월 후의 사냥터를 미리 준비한다. 그들은 지금 미래의 공략대상으로 어디를 생각하고 있을까. 외환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기업의 실적이 악화하고 있는 점을 고리로 끔찍한 시나리오를 그린다. 미 기업들에 투자한 자금이 손실을 입게 되고 편입자산의 손실을 떼우기 위해 아시아 우량자산에 투자한 자금을 팔게 될 것이라는 그림이다. 일순간 아시아에 투자된 헤지펀드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대목이다. 경기둔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가들에 투기자금이 대이동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면…. 있어서는 안될 최악의 그림, 불행하게도 ‘딥 임팩트’의 상황은 점점 구체화돼 우리 외환시장의 목을 조여들고 있다. /특별취재팀=김영기기자 이종배기자 김민열기자 현상경기자 yo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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