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르면 스페인 지중해 연안에 있는 아담한 현대식 별장의 풀장 주변. 인생 역전의 TV다큐멘터리 ‘그때 그 사건’ 촬영을 위해 PD 질 릴링턴(박미현)과 카메라맨이 등장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17년 전 은행강도였던 빅 파크스(이남희)와 그를 잡아 시민의 영웅이 됐던 더글러스 비이치(김신기). 질은 시청률을 높이기위해 우연을 가장해 더글러스를 빅의 별장에 초대한다. 17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180도 바뀌었다. 은행강도였던 빅은 특유의 달변으로 교도소 수감생활 중 질의 눈에 띄고 이를 계기로 단번에 TV스타가 됐으나, 한때 영웅이었던 더글러스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평범한 시민이 돼 있었다. 질은 별볼일 없는 시민이 된 더글러스를 다시 영웅으로 만들고, 빅의 과거를 들춰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 시청률 확보는 ‘떼논당상’이라는 생각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영국의 희극작가 알렌 에이크번의 원작을 번역한 연극 ‘막판에 뜨는 사나이’가 서울시 극단의 정기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주로 해 온 서울시 극단이 관객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이번에는 블랙 코미디를 선택했다. 작품은 엉뚱한 상황과 대화들로 관객들을 웃음을 전하면서도 강렬한 사회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진정한 영웅이 사라진 시대, 대중매체에 의해 영웅이 된 더글러스와 전과자이자 거짓 투성이인 TV스타 빅을 대비시켜 도덕과 부도덕에 대한 일반적인 가치 판단의 오류를 해부한다. 인간은 권선징악적인 이분법적 논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상황이 인간을 변하게 한다는 것. 또 필요하면 쉽게 영웅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과감하게 버려버리는 대중매체에 대해서도 일격을 가한다. 관객들은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진정한 영웅은 없지만 인간들의 마음 속에는 누구나 영웅적인 요소를 담고 있으며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배우겸 연출가로 알려진 박광정이 연출을 맡았으며, 무대에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남희가 서울시극단과 호흡을 맞춘다. 여기에 무대미술가 윤정섭이 실제 수영장을 무대에 설치해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지중해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9월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02)399-1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