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6월 2일] 부동산 시장의 마이너리티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 1983년. 서울시는 양천구 목동과 신정동 일대에 460만여㎡ 규모의 신시가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안양천 주변 뚝방촌에 모여 살던 3만2,000여명의 빈민에게는 이주비 50만원과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당시 신시가지에 조성되는 66~192㎡형 아파트 중 66㎡형의 분양가가 2,100만원에 달해 빈민들은 대부분 아파트 입주는 ‘언감생심’ 꿈꿔보지도 못한 채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이 같은 개발 논리에 의한 주거권 위협은 시대가 변해도 무덤덤하게 반복되고 있다. 장영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시범뉴타운 중 한곳인 길음 뉴타운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17.1%에 불과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추산할 경우 오는 2010년까지 뉴타운 사업으로 서울시내에서 철거될 10만가구 중 8만여가구가 밀려나게 되는 셈이다. 중구 신당재개발구역에서 20년간 중개업을 하고 있는 신일공인의 대표 K씨는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인근 노후주택 가격까지 크게 올랐다”며 “개발보상비와 이주비를 받기는 하지만 추가분담금을 낼 능력이 없는 원주민들은 하나 둘씩 서울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서울시내 뉴타운은 ‘머니게임’의 투기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개발 소문이 도는 곳에는 어김없이 추진위원회가 난립해 집값을 띄우고 기획부동산과 외지의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지분가격만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채 차익을 거두고 떠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WSF)은 올 초 “오늘날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개발의 혜택은 극소수의 가진 자들에게만 돌아가고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 박탈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개발보다 인간을 위한 배려’를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지방자치단체와 관계 당국에서는 뾰족한 ‘투기방지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각종 개발계획만 쏟아놓고 있다. 개발 논리에 가려져 지금 이 순간에도 주거권을 위협 받고 있는 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외관만 화려한 뉴타운이나 각종 개발사업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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