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금융사들 기초 체력만 믿어선 안돼… 모방서 창조로 변신을"

은행들 쌍둥이 같은 영업행태 버리고<br>지배구조·소비자보호등 SW혁신 필요<br>대출 중단사태는 고려시대나 있을 일<br>올해안에 헤지펀드 1호 도장 찍을 것



특별인터뷰 김석동 금융위원장 김석동(사진) 금융위원장은 우리 금융산업의 영원한 대책반장이자 위기를 몸소 거치면서 우리 금융산업의 뼈대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 때문일까. 그는 유독 위기상황에 대한 촉수가 발달해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대공황 때의 경제지표를 보여주면서 위기를 얘기했다. 그리고 요즘은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높은 톤으로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대비를 요구한다. 그래서일까. 김 위원장은 서울경제신문이 장기 기획으로 준비한 '리빌딩 파이낸스' 시리즈에 즈음해 요청한 공식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취임 8개월째가 되도록 한 번도 언론과의 공식 만남에 응하지 않던 그였다. 그가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이유는 하나였다. 금융산업의 문제가 무엇이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를 액면 그대로 얘기하고 이를 통해 금융회사들이 서둘러 준비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우리 금융회사들이 기초체력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20년대 대공황을 머리에 그린다"고 얘기한 그는 "시장이 불안하고 금융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는 결코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며 선제대응을 역설했다. 우리 금융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모방'이라고 정의한 김 위원장은 '창조적 금융산업'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은행들의 쌍둥이 같은 영업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금융산업에 대해 밝힌 고백과 진단을 특유의 독설과 질타, 그리고 진한 당부의 말을 통해 전한다. 1920년대 대공황 반추…금융산업 기초체력만 믿어선 안 돼 김 위원장과 인터뷰한 날은 19일. 주가가 100포인트 이상 추락한 날이었다. 대뜸 지금의 상황에 대한 진단을 물어봤다. "시간이 걸리고 오래간다고 봐요. 대신 금융위기 때처럼 한 번에 반 토막 나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의 연장선입니다. 2008년에는 금융 부문이 레버리지(차입) 효과로 팽창했다가 줄어들면서 시장이 붕괴위험을 맞았죠. 그걸 돈을 통해 회복시켰어요. 이번은 진앙지가 금융이 아니고 실물이에요. 남유럽의 위기, 이것은 올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근저는 실물이에요. 실물이 부진하면서 3대 거시정책에서 환율하고 금리를 못 쓰니 재정을 쓴 것인데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르면 3%밖에 못 쓰는데 그걸 누가 따르겠습니까. 결국 재정만 쓰다 보니 부채 문제가 커진 겁니다. 미국도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금융시스템도 예전같지 않아요. 중국은 인플레이션 문제 때문에 안전모드를 취하고 있어요. 전세계적으로 실물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입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금융산업이 기초체력만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외 어떤 수치를 보나 우리나라는 건전해요.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금융의 기본역할을 수행할 수준에는 올라섰어요. 문제는 기초체력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권투선수가 링에 오르려면 체력만 갖고는 안 돼요. 기술ㆍ상대 분석도 해야죠. 그래서 여러 가지 대비책을 챙기고 있는 겁니다." 우리금융산업 70~80점…모방에서 창조로 전환해야 그의 말은 바로 우리 금융산업에 대한 진단으로 이어졌다. 그는 우리 금융산업에 대해 70~80점을 매겼다. 그러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발전의 속도차이를 문제로 지적했다. "금융시장과 금융사 규모가 커지고 최첨단 금융상품과 제도가 도입되는 등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는 급격한 팽창이 있었죠. 그러나 지배구조나 리스크 관리 능력, 금융상품 판매방식과 소비자 보호 등 소프트웨어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이뤄져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파생상품 거래규모는 세계 1~2위를 다투지만 한 쪽에서는 1970~1980년대 수준의 금융상품 판매방식이나 지배구조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전략이 '모방'에서 '창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융선진국의 사례와 제도를 모방해 빠른 시간 내에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해왔어요. 앞으로는 규제개혁 등을 통한 창조적 금융산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금융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방안도 같은 줄기에서 하고 있어요." 은행 쌍둥이 영업행태 문제…몸집 더 키워야 김 위원장은 은행들의 모습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내 시장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어요.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시장을 공략하는 쌍둥이 같은 영업행태는 글로벌 은행이 나오지 못하는 주요 원인입니다." 우리 은행들이 국외에서 벌어들인 돈은 2008년 5% 수준이었지만 2009년 4.8%, 2010년 4.5%로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은행들이 몸집을 더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전히 자산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더 뱅커'가 발표한 2010년 세계 1,000대 은행 순위를 보면 1위인 BNP파리바의 총자산은 2조6,713억달러에 달해요. 2~4위도 2조달러가 넘고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중국 공상은행(ICBC)은 1조7,200억달러 수준입니다. 하지만 국내 1위인 우리금융지주는 2,568억달러 수준입니다. 세계 정상급 은행의 10분의1도 안 돼요." 은행 재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100% 공감했다. 금융권 판도를 다시 짜게 되면 정책금융기관의 역할과 위치도 자연스레 조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아쉽지만 출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이번 매각절차를 통해 우리금융과 합병할 수 있는 금융사는 어딘지, 사모펀드는 누가 들어올 수 있나, 정부가 제도적으로 해줄 수 있는 부분은 누구인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등이 모두 수면 위로 떠올랐어요. 아쉽지만 다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들이 새로운 판을 짤 수 있도록 한 게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대출중단 사태는 '고려시대 금융'한 것 김 위원장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중단 사태에 직격탄을 날렸다. "고려시대 때나 있을 법한 일"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대출을 중단할 수 있습니까. 조선시대에도 이런 금융은 없어요. 몇몇 금융사의 가계대출 증가분이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급하니까 지점에 공문을 보내서 대출을 그만하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운전기사가 승객을 모시고 가는데 60~70㎞로 가라고 했다고 합시다. 속도제한이 따로 없으니 100㎞로 달리다가 나중에 급브레이크를 밟아 평균 속도를 맞추면 뭐합니까. 운전기사는 고객을 안전하고 편하게 모시는 게 기본이에요." 접근방법도 좋지 않다고 했다. 금융권의 문제해결 방법이 여전히 거칠다는 얘기다. "충당금을 더 쌓게 하든지 자산(대출)을 건드리기보다는 부채(예금)를 조정할 수 있는 예대율 규제를 강화하든지, 자금조달을 어렵게 하면 됩니다." "헤지펀드 올해 안에 내 손으로 도장 찍을 것" 김 위원장은 "금융은 사람이 중요한데 사람이 많이 바뀐 데가 있다"며 "그곳이 바로 자본시장 부문"이라고 말했다. 은행은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업무처리를 하고 있지만 증권 등 자본시장은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 영역은 젊은 친구들이 무서운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어요. 세계 정상급 실력이라고.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에서 들어오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금융산업을 키우기 위해 자본시장에 승부를 걸려고 합니다." 이번에 도입되는 헤지펀드에 대해서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헤지펀드는 고급인력이 있어야 합니다. 헤지펀드가 국내에서 이미지가 좋지 않아 그렇지 가장 안전한 자본이에요. 안전하게 운용하려면 귀재가 있어야 합니다. 자금운용뿐 아니라 리스크는 별도로 해야 하고 법적 문제, 판매ㆍ관리, 감시 등을 다 갖춰야 하죠. 이게 자본시장의 총아입니다. 헤지펀드가 본격적으로 운용되면 우리 금융시장은 획기적으로 달라질 겁니다." 김 위원장은 사모펀드(PEF)를 처음으로 도입한 주인공이다. 이번에는 헤지펀드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2004년에 PEF를 만들 때 헤지펀드도 도입하려고 했어요. 그때 저항이 심해서 못 했죠. 올해 관련법을 통과시켜 헤지펀드를 만들 거예요. 올해 1호를 내 손으로 도장 찍을 것입니다. 반드시 인가할 겁니다." 리세즈 오블리쥬 실천해야…정치 물들면 금융 만한다 김 위원장이 보기에 금융권에는 부족한 게 하나 더 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따뜻한 감성을 덧입혀야 한다는 것이다. "돈 많은 사람들만을 위한 금융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특히 서민금융 쪽은 (내가) 있을 때 반드시 틀을 잡고 넘어갈 겁니다. '리셰스 오블리주(Richess Oblige)'가 필요합니다. 성공한 사업가는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선행이나 자선에 모범을 보여야 해요." 하지만 이런 움직임과 포퓰리즘은 명확히 구분했다. "정치에 물들면 금융이 망해요. 금융은 국가경제의 기반이고 그 기초 위에서 경제가 섭니다. 그거를 흔들면 안 돼요. 국민주 방식의 우리금융 민영화, 저축은행 피해자에게 초과 예금부분 보장, 서울보증보험의 무분별한 채무탕감 등을 막아야 할 포퓰리즘이에요." 지주회사 보험사 인수 바람직…신용카드 팽창 전략은 구태 보험 등 2금융권의 전망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돌려봤다. "고령화 진행에 따라 사회ㆍ경제적 비용을 정부가 대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보험사의 역할은 더 커질 것입니다. 보험사들도 퇴직연금뿐만 아니라 종신연금ㆍ노령자건강보험ㆍ간병보험 등 다양한 노후 대비 상품개발에 노력하고 있죠. 정부도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최근 금융지주사들의 보험사 인수 추진에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금융위기 이후 보험산업도 충분한 자본확충이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어요. 금융지주사들이 중소 보험사의 인수합병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산업 전체의 재무건전성 제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확장일로를 걷고 있는 카드산업에 대해서는 일침을 가했다. "카드를 남발해 현금서비스ㆍ카드론 등 대출을 통해 이익을 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신용카드산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생각해 팽창 일변도의 영업전략을 펼치는 것은 반드시 버려야 할 구태입니다."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예외 없는 원칙을 강조했다. "경영진단 결과에 따라 정부의 지원으로 정상화가 가능한 곳은 서민금융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체 정상화가 어려운 곳은 법과 원칙에 따라 정리할 것입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저축은행 산업의 신뢰도 회복될 것입니다. " 제2 블루프린트 만들 것 김 위원장은 막강한 카리스마만큼 시장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앞선다. 이 때문에 우리 금융산업의 미래가 담긴 그림을 자기 손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금감위 감독정책국장 시절에는 '블루프린트'를 만들기도 했다. "금융위원장으로 처음 올 때부터 금융산업을 어떻게 할지 생각했어요. 전체 틀을 만든 뒤에 할지, 하나씩 문제점을 고치고 발전방향을 만들지 고민했어요. 이번에는 귀납법으로 하기로 했어요. 연역법으로 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매력적이지만 시간이 많이 걸려요. 하지만 금융산업의 전체적인 틀을 다시 세우는 일은 중요해요. 개별적인 방안을 만들어서 적용한 뒤 이를 모아 제2의 블루프린트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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